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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을 보는 국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0일간의 표류 끝에 정기국회가 정상화 되었다. 여야협상에 따라 국회가 제모습을 찾게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개헌 등 모든 정치현안에서 여야의 입장과 시각은 평행선만 긋고 있어 국회운영이 원만히 이루어질지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지금 정치권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실로 산적해 있다. 미국의 보호장벽과 시장개방 압력은 한국의 수출신장에 큰 타격을 주고 있으며 전반적인 경기침체는 「민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중공의 활발한 한반도문제 거론도 중요한 과제며 특히 고향방문단의 상호교환 등 남북관계도 국민의 깊은 관심사다.
밖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갈수록 냉엄해지는데 정치권의 대비가 과연 국민의 기대나 믿음을 받을만했는지 의심스럽다.
순전히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사소한 문제에 발이 묶여 북새를 떠는 것은 어디로 보나 떳떳치 못한 길이다.
그것으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선을 잡는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정치의 올바른 모습은 아니다.
국민이 국회를 20일씩이나 공전시킨 경위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납득은 못하는 것은 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대응이 당리당략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디 대단치도 않은 문제를 놓고 도토리 키재기 식 「몸싸움」이나 벌일 때인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인가. 설혹 상대당과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 고지를 점령한다해도 그 때문에 가속될 정치에 대한 불신은 또 어찌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내외의 도전을 선도적으로 해결해야할 책무를 지고 있다면 이같은 소박한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란 성립될 수 없다. 왕도건, 패도건, 민주정치건 국민을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룰이다. 그런데도 요즘 정치의 움직임을 보면 상대당은 있을지언정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래가지고 정치가 어떻게 국민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12대 국회는 분명히 11대와는 다른 판세로 짜여져 있다. 이번 정기회까지 국회가 네번 열렸지만 그때마다 여야의 줄다리기로 귀중한 회기를 허송한 것은 달라진 상황에 상응하는 체질이나 체제를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벌써 반년이 지난 오늘, 그만하면 상대방을 아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언제까지고 탐색만을 할 수는 없다. 달라진 여건에 맞추어 새로운 룰을 정립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누구나 알듯이 앞으로 3년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장래와 관련, 의미심장한 기간이다. 개헌을 비롯한 정치문제는 어차피 국회가 충분히 다루지 않으면 안될 현안들이다. 안보문제·민생문제 또한 국회에서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적절한 처방이 나와야 한다.
회기라야 이제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문제가 밀도 있게 다루어져야겠지만 내년도 예산안이 다른 현안에 밀려 막판에 졸속처리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소절에 구애받아 대국을 그르쳤다는 평가가 또 나와서는 안되겠다. 심기일전해서 국회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기관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확인시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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