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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쿠데타” 비박 “작전 승리” 청와대 “있을 수 없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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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권성동 사무총장, 정진석 원내대표,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왼쪽부터)이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비대위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비대위는 유승민·안상수·윤상현·강길부 의원의 복당을 결정했다. 이들의 복당이 마무리되면 새누리당은 122석에서 126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된다. [사진 조문규 기자]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정확히는 무소속 유승민 의원의 복당을 주도한 정진석 원내대표와 사전에 이를 통보받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 간의 갈등이다.

정진석, 비대위서 “당장 복당 결정”
김희옥 “내주에” 맞서자 투표 부쳐
비박 “사전 공감, 일사천리로 진행”
친박 “청와대도, 김희옥도 당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쿠데타”라고 공공연히 말했고 비박계 의원들은 “작전의 승리”라고 했다. 16일 하루 새누리당 혁신비대위 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의 한 인사는 “회의 전에 비주류(비박계) 쪽에서 ‘오늘 결정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회의가 시작되자 작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친박계인 김태흠 사무부총장 등을 내보냈다. 그러곤 “오늘 복당 문제를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은 “의견을 수렴해 다음주에 결정하자”고 맞섰다.

금세 비대위는 찬반으로 갈라졌다. “복당 논의를 더 늦춰선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차기 지도부에서 결정하는 게 낫다”(오정근 위원 등)는 반대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특히 정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오늘 복당 결정을 안 하는 건 범죄”라고 공격하면서 회의가 급격히 경색됐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에 민세진 위원이 “민주적 절차를 밟자”고 해 무기명 투표에 돌입하게 됐다. 투표는 번호를 적는 방식(오늘 결정한다 1번, 다음주 중 결정한다 2번)이었고 ‘1번’이 6표 이상 나오자 더 이상 개표하지 않았다.

‘오늘 결정’으로 정해지자 복당 반대파에선 “비대위가 복당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고 고성을 질렀다. 뒤이어 ‘일괄 복당’(1번), ‘선별 복당’(2번)이 안건으로 올랐고 이 역시 무기명 투표로 일괄 복당으로 결정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일괄 복당이 결정된 후 정 원내대표가 청와대 김재원 정무수석에게 전화로 결과를 알려줬다”며 “그때까지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친박계는 반발했다. 김진태 의원은 “유승민 의원을 복당시킨다고 화합이 되겠느냐”며 “본인의 ‘잘못했다’는 사과가 선행돼야 하고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의원총회를 열어 결정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김태흠 사무부총장은 “마치 쿠데타를 하듯이 복당을 밀어붙였다”고 말했고 다른 친박 인사는 “청와대도 당했고 김희옥 위원장도 당했다”고 반발했다.

파장은 오후 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 위원장은 17일로 예정된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연기해 달라고 정부 측에 요청했다. 그러곤 김선동 비서실장을 통해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한 방송에 출연해 “혁신비대위에서 복당 문제를 의결한 건 아무 문제가 없다. 재논의를 위한 의원총회도 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김태흠·이장우 의원 등 친박계는 긴급히 대책을 논의했다. 정 원내대표는 따로 초·재선 의원 10여 명과 여의도 한 식당에서 만찬회동을 했다. 한 참석자는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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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의원이 정 원내대표에게 “어떻게 의견수렴 없이 전격적으로 결정할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정 원내대표는 “당무는 비대위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응수했다. 정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이 회의장을 잠시 나갔다 오더니 태도가 변했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선 초선의 강효상 의원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김 위원장이 청와대 오더라도 받았다는 뜻이냐”고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혁신비대위의 복당 결정이 앞으로 당·청 갈등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유 의원의 복당으로 8월 9일 전당대회 구도도 출렁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경우에 따라 8월 전대가 ‘최경환 대 유승민’ 구도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현일훈·김경희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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