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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기와 함께, 연 매출 200억 회사도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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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배구 국가대표 출신 주부, 연 매출 200억원대 중소기업 대표, 한국에 사는 인도네시아인 여성, 온 가족이 피해를 입은 가장….

가습기 살균제 리포트 <중> 삶이 무너진 피해자들

중앙일보 취재팀이 인터뷰한 109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각양각색이었다. 평범했던 그들의 삶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정서적·경제적으로 곤두박질쳤다.

피해자 안은주(48)씨는 지난 6년간 병원비로만 1억8000여만원을 썼다. 안씨는 “정부나 가습기 살균제 업체로부터 받은 지원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배구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안씨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2010년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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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폐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한 안은주씨의 모습. 안씨는 6년 동안 치료를 받으며 1억8000여만원의 빚을 졌다. [사진 오상민 기자]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병원에선 급격히 폐가 굳어 얼마 못 살 수도 있다는 경고만 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2011년, 안씨는 ‘2년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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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씨는 3등급을 받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안씨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확인됐고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인과관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안씨는 곧장 피해 접수를 했지만 3등급 판정을 받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후 안씨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밀양 집과 서울 대형병원을 오가느라 남편도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지난해엔 폐 이식수술을 받느라 부부가 각각 1억5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 두 개를 떠안게 됐다. 그는 “어머니와 동생이 저를 살리려고 집을 담보로 잡아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안씨의 남편은 일용직으로 일하며 이자를 갚고 있고, 고1이 된 아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빨리 할 수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안씨는 “‘아이가 졸업 후 당장 취직할 수 있는 특성화고로 가겠다고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나 때문인 것 같아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1등급 판정을 받은 김하용(62)씨도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김씨는 20년 넘게 의약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며 연 매출 200억원대 규모로 키웠다. 그러나 2008년 거래처 SK케미칼로부터 판촉용 가습기 살균제 2박스를 받아 쓰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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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하용씨. 매일 25m 길이의 수영장 트랙을 10바퀴 넘게 헤엄칠 정도로 건강했지만 13일 인터뷰 때는 산소호흡기를 끼고도 숨이 가빠져 때때로 말을 멈춰야 했다. 작은 사진은 김씨가 피해를 입기 전인 2007년 필리핀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오상민 기자]

김씨는 이후 여러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했고 2009년 “폐 절반이 굳어 3개월도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다. 14년간 하루도 안 쉬고 수영을 할 만큼 건강했던 김씨의 삶은 한순간 무너졌다. 그는 “폐 이식 성공 확률이 50%도 안 된다고 해 삶을 포기했었다”며 가쁜 숨을 토해냈다.

건강이 악화된 김씨는 평생 일군 회사를 급하게 처분했다. 모아 둔 돈도 투병과 소송에 대부분 쏟아부었다. 김씨는 “폐 기능이 약해져 지난 2월 뇌출혈로 쓰러졌고, 두 달간 입원해 병원비 500만원을 썼다.

하지만 폐가 직접 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에선 산소호흡기 사용비와 폐 컴퓨터단층촬영(CT)비 15만4581원만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증거가 어딨느냐고 책임을 회피하던 업체들이 이제 와서 보상을 하겠다는데,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 지금도 모른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운데는 다문화 가정도 있었다. 2002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인도네시아인 앙 마리니(40)는 남편과 청각장애가 있는 아들이 1등급 피해 판정을 받았다. 마리니는 새벽 2~3시까지 일하며 가장 역할을 했다. 남편과 아들을 돌보기 위해 간병인도 고용해야 했지만, 간병비 지원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중환자실이 뭔지도 모를 만큼 한국말이 서툰 상황에서 가족이 쓰러졌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겨우 알아들었다. 그런데도 정보에 늦을 수밖에 없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한국 사회에 정말 화가 났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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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가 피해자가 된 경우도 있다. 나모(42)씨는 자신과 아내가 3등급 판정, 딸 둘은 2등급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1등급 피해자인 아들은 2007년 사망했다. 주변의 삐딱한 시선은 피해자들을 더 괴롭게 한다. 안은주씨는 “지원금 한 푼 받은 적 없는데 ‘보상은 많이 받았느냐’는 말부터 돌아온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돈 때문에 떼쓰는 사람 취급받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채윤경·손국희·정진우·윤정민·송승환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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