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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과 북에 헤어져 살아온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나는 장면은 감격의 드라마였다.
40여년이나 흩어져 살아야했던 이산의 한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장면으로는 당연하다.
목석이 아니고 사람인데 감정의 교류가 없을수 없다.
두손을 마주잡고 얼굴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리고, 몸을 부둥켜안고 떨어질줄 모르는가 하면,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기도 했다. 감격 끝에 실신해버린 노모도 있었다.
믿기지않는 현실과 그 현실을 확인하는 행동의 양식이 그렇게 밖에 표현될수 없는 것이 바로 혈육의 정이다.
혈육이란 말은 원래 소순흠의 천거시에서 처음 사용되었을 때는 「피와 살」 이란 의미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혈육지간 혹은 골육지간은 핏줄이 같은 친척을 말하는 뜻으로 굳어지고 있다.
혈족 혈속은 물론 피붙이 혹은 살붙이라고도 한다. 좁게 말할 때는 자기가 낳은 자녀를 뜻하기도 한다.『삼단의정현주』에서는『혈속위 부자형제지친 동출어일기자』 라고해서 부자형제등 가장 가까운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 혈육의 사이에 존재하는 특수한 정이다.
그 혈육애가 유난히 강한게 동양인이고,특히 우리 민족이다.
『동서의 만남』 의 저자인 「필머노드롭」 은 서양문명이 이론적이라면 동양문명은 미학적이라고 한다. 사실은 미학적이라기보다 서정적이란게 더 가깝다. 격정도 알면서 아늑한 정감도 있는게 동양인이다.
한국문화를 『먹고 우는 문화』 라고 규정한 외국인도 있었다.
일본인 유종열은 『조선과 그 예술』에서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인은 돈보다, 정치보다, 군대보다 한가닥의 인정에 보다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과연 그 말이 진실인지는 알길이 없다. 인정보다 돈과 정치와 군대를 사랑하는 한국인도 많은 세상이다. 또 이념과 체제를 더 좋아해 혈육이 만나는 장소에서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이산 혈육의 상봉장면을 보면서 역시 한국인은 인정이 강한게 아닌가 되새겨 본다.
세뇌된 이념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지만 혈육의 정은 몸짓과 눈물로 넘쳐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간에도 많은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만남을 보아 왔다. 82년말엔 일제시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한중일 3국에 흩어져 살던 세자매가 47년만에 일본 오오사까 공항에서 만나는 장면도 보았다.
또 83년엔 KBS의 이산가족찾기로 남한땅에서도 못찾던 혈육이 만나는 장면도 보았다.
그러나 이번 혈육 상봉은 한서리 한을 더 만들고 있다. 체제의 벽 때문에 이제 겨우 만났으나 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픔은 이 지구상에 오직 우리 뿐이란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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