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앙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하나 밖에 없는 지구가 바로 인간의 문명에 의해 지금 한창 집병을 앓고 있다. 9월16일자 타임지가 커버 스토리로 다룬 『죽어가는숲들』이라는 특집기사를 보면 나무들의 죽음이 마치 병상에서 마지막숨을 거두는 인간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산성비(acid rain)는 눈이나 안개처렴 나뭇잎에 내려앉아 광합성작용을 방해하고, 또 땅에 떨어져 뿌리를 해친다. 영양을 곧급받지 못한 나무는 잎이 바래고 쇠약해진다. 결국 병든 나무는 자연현상에 대한 저항력과 면역성을 잃고 AIDS(후천성 면역성 결핍증)환자처럼 서서히 죽어간다.-
이 기사는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삼림의 고사현상을 다룬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톡히 극심한 서독의 슈바르츠발트 대삼림의 죽어가는 숲을 묘사한 것이다.
『아름다운 독일의 슈바르츠발트숲이여! 누가 그대를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너도밤나무 숲을 쌓아 올렸는가! 내가 살아 있는 한,내목소리가 저 멀리 울려 퍼지는한 나는 조물주의 명작을 노래하리. 아름다운 슈바르츠발트 숲이여!』
오스트리아 작가 「모질」이 노래한 이 슈바르츠발트 숲은 이제 75%의 수목이 고사했다.
이와같은 고사현상은 서독 전체삼림의 7.7%,동독은 86%, 체코는 20%에 이른다.
지구상의 삼림은 모두 38억3천7백만ha인데 이것은 전육지 면적의 29%가 된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보다 훨씬 더많은 숲이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삼림을 정복하고 파괴함으로써 문명을 일궜다. 말하자면 인간과 삼림과의 투쟁이 곧 인류문화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프랑스의 삼림학자 「데퐁테네스」가 『인간과 삼림』 이란 저서에서 유머처럼 한말이 있다. 『우리가 「철도」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차라리 「목도」라고 해야 옳다. 초기의 철도에는 침목과 차체 등으로 목재가 철보다 2배나 더 쓰였기 때문이다』
삼림은 토양의 피부다. 따라서 나무가 없으면 피부가 병든다.
스페인의「생의 철학자」 「오르데카·이·가세트」는 어느 글에선가 『유럽의 떡갈나무가 시들고 있는것은 유럽문명의 종말을 예고하고 동양의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동양의 아침」 이라고 우리는 너무 좋아하지 말자. 언제 유럽의 앙화가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지금까지 자연(삼림)을 정복하고 파괴한 인류는 이제 자연의 보복올 받고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