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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멀티홈런 쳐도 벤치…감독님 너무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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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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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서비스 시애틀 감독(아래 사진)은 오른손 투수가 상대팀 선발로 나오면 이대호를 기용하지 않는 플래툰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다. 이대호는 전날 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는데도 11일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가 연장 10회에 대타로 나와 안타를 터뜨렸다. [시애틀 AP=뉴시스]

스콧 서비스(49)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은 얼마나 더 고집을 피울 수 있을까.

시애틀 감독, 우투수 뜨면 기용 안 해
“한국인 나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것”
립서비스로 이대호 뺀 미안함 전해

이대호(34·시애틀)는 12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 경기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전날 연타석 홈런(시즌 9·10호)을 터뜨리며 7-5 승리를 이끈 이대호는 이날 텍사스에서 오른손 투수 콜비 루이스가 선발로 나오자 벤치를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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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1-1이던 연장 10회 말 1사 1루에서 결국 대타로 들어섰다. 시애틀 홈 팬들은 기립박수로 이대호를 맞았다. 마운드에는 지난 4월 14일 이대호에게 끝내기 투런 홈런을 허용했던 텍사스의 왼손 투수 제이크 디크먼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텍사스는 이대호가 대타로 등장하자 재빨리 디크먼을 내리고 오른손 투수 맷 부시를 올렸다. 이대호는 볼카운트 0볼-1스트라이크에서 부시의 2구째 슬라이더(시속 145㎞)를 밀어쳐 우전안타를 날렸다. 그러나 시애틀은 1사 1·2루 찬스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결국 11회 연장 끝에 1-2로 졌다.

시애틀 타임스의 라이언 디비쉬 기자는 “이날 경기 전 서비스 감독이 ‘모든 한국인이 아마 나로 인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홈런 두 방을 터뜨린 선수를 하루 만에 벤치로 불러들이는 것에 대한 감독의 미안함을 전달한 것이다. 립서비스를 충분히 하는 대신 서비스 감독은 자신의 기용법을 바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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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린드

서비스 감독은 1루 포지션에 플래툰 시스템(비슷한 기량의 두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다. 상대 선발이 오른손 투수일 때는 왼손 타자 애덤 린드(33)를, 왼손 투수일 때는 오른손 타자 이대호를 1루수로 내보내는 것이다. 플래툰 시스템은 두 선수가 감독의 기용법을 받아들여야 유지될 수 있다. 한 선수의 성적이 뚜렷하게 낫다면 선수와 감독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이대호는 지금까지 서비스 감독의 기용법에 대해 특별하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 타자로 인정받았던 이대호도 메이저리그에선 신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비스 감독은 특유의 ‘립서비스’로 이대호를 달랬다. 이대호가 4월 9일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날렸을 때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가 공을 으깨는 듯한 홈런을 쳤다. 그는 빅타임 플레이어”라고 극찬했고, 지난 11일 연타석 홈런을 보고는 “오늘은 이대호의 밤”이라며 축하했다.

서비스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을 고집하는 이유는 오직 데이터다. 야구통계학 세이버매트릭스를 중시하는 그는 지난해 10월 부임하자마자 시애틀 선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약점이었던 1루를 강화하기 위해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린드를 영입했고, 오른손 유망주 타자인 헤수스 몬테로(26)와 경쟁하도록 했다. 3월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이대호는 제3의 옵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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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대호는 몬테로를 실력으로 밀어냈고, 린드마저 기록으로 앞서고 있다. 12일 현재 이대호는 42경기 104타석에서 타율 0.308, 홈런 10개를 기록 중이다. 메이저리그 홈런 전체 1위 마이크 트럼보(볼티모어 오리올스)가 61경기 240타석에서 홈런 20개를 터뜨린 것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른손 투수를 상대하면서 더 많은 기회(48경기 158타석)를 얻은 린드는 타율 0.247, 홈런 8개를 기록했다. 이 정도 성적 차이라면 주전과 백업 선수를 가르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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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대호는 왼손 투수를 상대로 6홈런 타율 0.298, 오른손 투수와 맞서 4홈런 타율 0.319를 기록 중이다. 원래 이대호는 좌·우 투수를 가리지 않는 타자다. 린드는 오른손 투수에게 홈런 7개를 빼앗았지만 타율은 0.241에 그친다. 왼손 투수 상대 타율(0.294)보다 오른손 투수를 상대한 기록이 오히려 좋지 않다.

그래도 서비스 감독은 플래툰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비스 감독이 애용하는 플래툰 시스템 근거는 ‘기록’이 아니라 ‘고집’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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