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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빙하, 떠오르는 항로·자원 ‘신세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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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1 면

그린란드 일루리사트 인근의 아이스피오르 빙하. 온난화의 영향으로 내륙으로 70㎞ 거슬러 올라간 지점부터 빙원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빙산들이 빙하가 깎아내린 협곡을 꽉 채우고 있다. 최정동 기자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서니 가득히 설원이 펼쳐진다. 그린란드 일루리사트(Ilulissat)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도착한 아이스피오르 빙하다. 새파란 하늘 아래 하얀 얼음의 대지가 눈부시다. 바람 소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 속 우르릉하는 진동이 저 멀리서 낮게 깔린다. 가이드 레노는 “빙하가 우는 소리”라고 알려준다. 수십㎞ 떨어진 곳에서 빙하가 붕괴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지난달 22일 취재팀은 그린란드에 도착했다. 한국의 20배 크기인 그린란드는 81%가 1년 내내 얼음으로 덮여 있다. 만년설이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 빙원(ice cap)은 두께가 평균 1500m, 최대 3000m에 달한다. 빙원의 일부가 시간당 40m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얼음의 강, 빙하(glacier)다. 바다에 닿은 빙하는 아래부터 녹아내리다 무너져 빙산(iceberg)이 된다. 유네스코 아이스피오르 사무실의 프레드릭 레너트 매니저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흐르는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지고 무너져 내리는 곳이 10년 만에 15㎞ 이상 내륙 쪽으로 후퇴했다”며 “1900년 이후 100년간 후퇴한 거리와 맞먹는다”고 전했다.


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아이스피오르 빙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일루리사트 비행장에서 30분의 비행 끝에 빙하가 벼랑 모양으로 떨어져 나가는 곳(분리 빙하, calving front)에 도착하자 기장은 고도를 150m까지 낮춘다. 평평한 얼음의 대지가 갈라진 절단면이 마치 그랜드캐년처럼 이어진다. 절벽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산더미 같은 빙산이 만들어진다. 폭 6㎞, 두께 수백m인 빙하가 매일 40m씩 바닷속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빙산은 피오르를 따라 흘러내려 일루리사트 앞바다에 이른다. 지구온난화의 현장에 와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일루리사트에 가는 건 쉽지 않다. 인천공항에서 제트기로 핀란드 헬싱키까지 9시간, 다시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까지 3시간을 간 다음 프로펠러기로 3시간을 더 날아야 그린란드 남쪽에 자리 잡은 행정 중심지 누크(Nuuk)에 도착한다. 그린란드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인구는 1만7000명에 불과하다. 캐나다와 아이슬란드 사이에 위치한 덴마크령인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2009년부터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분야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앞서 20일 오전 누크 공항에는 초속 40m의 눈보라가 불었다. 1000㎞ 북쪽으로 우리를 태우고 갈 캐나다 봄바디어 37인승 쌍발 프로펠러기 대시8은 활주로에서 두 시간째 꼼짝하지 못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붉은 도장이 인상적인 에어그린란드는 ‘이마카 에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말로는 ‘아마도 항공’ 정도다. 바람이 살짝 잦아든 틈을 타 활주로를 박차 오른 비행기는 45분 후 캉거루수아크(Kangerlussuaq)에 잠시 내렸다 다시 일루리사트로 향하는 비행을 시작했다. 보통 백야 현상이 나타나는 북위 66도33분 선 이북을 북극 지방으로 본다. 일루리사트에 도착해서야 진정으로 북극 지방에 발을 디뎠다고 할 수 있다.


북극은 남극 대륙과는 달리 바다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얼음으로 뒤덮인 해저와 주변국 영토에는 지구상 화석연료의 25%와 30조 달러 규모의 지하자원, 2조 달러 규모의 수산자원이 넘쳐나고 있어 가위 ‘새로운 대륙’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북극이 열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녹으면서 물류·여객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북극 항로가 개척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러시아 연안을 따라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극 항로는 1만5000㎞다. 이 항로가 뚫리면 믈라카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기존 항로에 비해 거리로는 30%(7000㎞), 항해시간은 10일을 단축할 수 있다. 현재는 7월부터 4개월 정도만 운항이 가능하지만 2030년께면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 북극의 전략적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분 30%를 갖고 있는 러시아 야말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2018년부터 북극 항로를 통해 운송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북극 개발에 적극적이다. 임진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부원장은 “중국은 남중국해가 봉쇄될 경우의 대안으로 북극 항로 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한국도 자원과 물류 루트 확보는 물론 본격적인 북극권 인프라 개발에도 대비하기 위해 북극 관련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기사 4~5면


일루리사트(그린란드)=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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