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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적 정당성’ 문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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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31면

업무상 주로 한국인들과 한국말을 많이 해야했던 나는 최근에 외국인 대학생들과 나의 모국어인 영어로 밤 새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토론은 성(性)·인종·종교·성적취향에 기반한 인신공격으로 엉망이 돼 버렸다. 백인 남성인 나는 토론 도중에 “인종주의자” “성 차별주의자”“공격적이다” 이런 말들이 오가는 바람에 무척이나 난감했다.


미국에는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PC)’문화라는 게 있다. PC문화는 소수자(minority)를 보호하기 위해 성이나 인종 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을 하지말자는 운동이다.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하거나,인디언을 ‘네이티브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게 그런 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수자(majority)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외국학생들과의 밤샘토론에서 느낀 감정 또한 PC문화가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일종의 피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PC문화에 그사이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선의로 출발한 PC문화를 “당신은 성차별주의자”라는 식으로 매도해 상대방의 말을 막거나 어떤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대학 캠퍼스에선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나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이 이슈가 되고 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악의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어도 상대방이 모욕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시아계나 소수 인종 미국인에게 “너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행위다. 이는 상대방이 ‘진짜 미국인’이 아님을 드러나게 하는 질문이 돼 결과적으로 그를 공격하는 셈이 된다. ‘트리거 워닝’은 교수들이 강의내용 중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있는 경우 이를 사전에 학생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이 이 강의를 미리 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런 제약 때문에 자유로운 강의나 토론이 어려워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학생이라면 다른 시각으로부터 지나치게 보호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토머스 제퍼슨도 “대학은 인간정신에 대한 무한정의 자유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곧 한국을 떠나 ‘PC 문화’가 중요시 되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된다. 한국에서처럼 자유롭게, 솔직하게, 생산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 피해자가 다름 아닌 미국 학생들이 될 수도 있다.


마이클 람브라우아리랑 인스티튜트?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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