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헤어진 누님 못만난건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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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닷새만의 아침산책이었다. 3박4일의 남북적 평양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한적 이영덕수석대표(59·서울대신동132의2)는 30일 상오 7시 부인 정확실씨(55·이대교육학과교수)와 함께 평소 매일 오르던 집뒤 봉원동안산에 올라 서울의 아침공기를 마시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씻어냈다.
『6순의 누님을 지척에 두고도 끝내 만나지 못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1천만이산가족, 나아가 전국민의 아픔이지요』
이수석대표는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해 「속으로 울었다」며 특히 누님에게 드리려고 갖고 갔던 국산여자용손목시계 1개와 한복옷감, 허리띠 2개 등 선물을 전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수석대표의 가족들은 『평양에 있는 누님이 대단한 욕심장이에 미인이었고 평양여고보에 다닐때는 성적이 전교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의 수재였다』고 회고했다.
이수석대표는 29일 하오 집에 돌아와 부인 정여사와 장모 김영성씨(80), 막내딸 성인양(23·이대 의대4년)과 만나 나흘동안의 생활을 얘기했고 이날밤 9시20분쯤에는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큰형 봉덕씨(74·서울암사동) 집에 전화를 걸어 『잘 다녀왔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3대째 기독교집안인 이대표가족 7명중 이대표와 어머니 강원일씨(사망)·큰형 봉덕·두동생 수덕(55·서울여대교수)·준덕(50·서울총신대교무처장)씨 등 5명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 월남했고 아버지 이현일씨(사망)와 둘째누나 복실씨(67)만 평양에 남아 이산가족이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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