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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인구절벽의 또 다른 민낯인 낙태와 해외입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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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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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균
영남대 총장
바른과학기술사회연합 상임대표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3.1%(세계 51위)였던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2060년에는 40.1%(세계 2위)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1.24명)까지 맞물려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2060년 49.7%로, 전체 인구의 절반 아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대로라면 어렵사리 태어난 아이들이 고령사회의 짐을 고스란히 떠맡게 될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존립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식세대들이 겪어야 할 일이다. 근본 대책은 출산율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팍팍한 삶의 청년들은 결혼까지 포기하고, 고비용·초경쟁의 교육환경 탓에 기혼부부들마저 출산을 기피하는 마당에 출산율 올리기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인구절벽에 부딪혀 대한민국의 생산엔진이 멈춰서기 전에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오히려 현존하는 낙태율을 줄이는 일에서부터 실효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34만2000명, 2011년 16만9000명이 인공중절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2011년의 신생아 수가 47만여 명임을 감안할 때 전체 신생아의 36%에 달하는 생명들이 매일 463명씩 사라진 셈이다. 낙태만 없어도 출산율이 1.6% 이상 올라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구나 현행법상 ‘합법’적인 낙태시술은 전체의 5%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낙태 건수는 통계치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는 출산장려지원금, 무상보육, 무상급식으로 출산율 올리기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잉태된 생명들이 쉬쉬하는 가운데 버려지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생명의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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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낙태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문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하겠다. 다른 선진국가들은 미혼모 출산이 50%를 넘는다. 우리만 1.6%로 지극히 낮다. 그만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많음을 방증한다. 미혼모를 죄인시하는 사회적 냉대와 무관심은 미혼여성의 출산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로 만들고 있다. 결국 낙태를 선택하거나 태어난 아이를 ‘입양’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고 있다.

하지만 입양은 또 다른 형태의 ‘버림’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 1250명의 아기가 해외로 입양됐고, 이들 중 90%(1114명) 정도가 미혼모의 아이였다고 한다. 어떤 선택이든 미혼모에게는 잊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 국가적으로는 성장엔진의 동력을 사라지게 만든다. 해외입양은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남긴다. 1953년 이후 2014년까지 16만여 명의 한국 아이들이 부모와 고국으로부터 버려진 뒤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들에서 다시 태어났다.

다행히 현지에서 뛰어난 인물로 성장한 경우도 많다. 프랑스의 문화통신부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과 올해 2월 국가개혁장관에 취임한 장뱅상 플라세 상원의원은 프랑스로 입양된 김종숙과 권오복이다. 미국 프로풋볼(NFL) 버펄로 빌스의 공동구단주 킴 페굴라도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물론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그러한 능력을 발휘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그러나 해외입양이 국가 잠재력의 유출을 초래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연간 최소 17만 명의 어린 생명들이 낙태와 해외입양으로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던 것을 우리는 그동안 모른 체 해왔다. 이런 대한민국을 세계인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제 부끄럽지만 모순된 현실을 인정하고, 답을 찾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근본적 해결책은 생명존중문화의 구축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먼저 앞장서 주면 좋겠다. 버려지는 아이들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을 위해 국가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주었으면 한다. 미혼 임신여성들이 불법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출구를 마련해주기 바란다.

국가가 남편 대신 미혼모의 파트너가 되어 양육과 생활을 보장한다면 많은 미혼 임신 여성들은 배 속 아기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리기보다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아 장차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이런 정책들이 자칫 미혼모를 증가시키지나 않을까 우려할 수도 있다. 물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아이들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첫째는 반드시 해야 할 인간적 도리이며, 둘째는 생명을 구하면서 동시에 나라를 살리는 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노 석 균
영남대 총장
바른과학기술사회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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