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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시장 한국에 유리, 박서보 단색화 120억원 거래…정상화, 뉴욕 두 곳서 전시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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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기범 소더비 인스티튜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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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소더비 인스티튜트 교수는 “미술품 투자도 주식·부동산처럼 시장 원리와 큰 흐름을 읽으며 투자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상위 1%, 제3세계 현대미술, 그리고 단색화’.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의 김기범(33) 교수가 말하는 세계 미술시장의 키워드다. 김 교수는 세계적인 경매기업 소더비에서 예술법과 경매·투자·금융 등 아트 비즈니스를 가르치고 있다. 조지타운대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2008년 뉴욕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당시 목표는 인권변호사였다. 하지만 로스쿨에 단 하나 있던 예술법 강의를 들은 것이 진로 변경의 계기가 됐다. 미술시장에 푹 빠진 그는 2011년 법률회사가 아니라 소더비에서 일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변호사 동기들보다 수입은 적지만 미술시장 흐름을 분석하고 컬렉터를 만나 투자 방향을 논의하는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K옥션 초대로 방한한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미술품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라며 “주식·부동산처럼 시장 원리와 큰 흐름을 읽으며 투자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테파프(TEFAF)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638억 달러로 2014년 688억 달러에서 7% 감소했다. 23%나 하락한 중국 미술시장의 영향이 컸다. 영국 시장도 9% 하락했다. 하지만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 상위 1% 예술품 거래 금액은 9% 증가했다.

김 교수는 “세계 경제와 미술시장이 불안해지자 미술 컬렉터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작품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5년 만에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피카소와 모딜리아니가 좋은 예다. 투자가 많이 필요하지만 가치 안정성이 높은 유명 작가의 작품에 투자자들이 몰렸다.

전반적인 미술시장은 위축된 모습이다. 경매에 오른 작품 수가 줄었고 거래 금액도 감소했다. 김 교수는 시장을 침체기가 아니라 조정기라고 본다.

그는 “시장이 위축된 것은 맞지만 작품 거래는 꾸준하다”며 “조정 단계가 지나고 거품이 걷히면 다시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미술품이 성장할지 파악하는 일도 그의 업무다. 김 교수는 미술계 큰손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피카소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작가의 작품이 블루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지금 제3세계 현대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한국·브라질·일본·쿠바 작품 거래가 늘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예술운동과 미술가를 재조명하는 시도도 많아졌다.

김 교수는 “세계 각지에서 저평가된 작가를 찾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관심이 높아지며 제3세계 현대미술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네오 콘크리티즘 작가들이 좋은 예다. 1960년대 브라질 현대미술을 주도한 네오 콘크리티즘은 정치·사회적인 의미를 작품에 담아 표현해 온 미술 양식이다. 미국에선 지난 2~3년 사이 네오 콘크리티즘 주요 작가인 리지아 클라크, 프란츠 웨이즈만, 세르지오 카메로의 작품 거래가 늘었다.

한국 단색화도 화제다. 1970년대 한국의 추상회화 운동인 단색화는 2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미술품으로 떠올랐다. 해외 미술계 인사들도 서구 미니멀리즘이나 일본의 모노크롬(Monochrome)과 구별해 ‘단색화(Dansaekhwa)’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단색화는 해외 유수의 경매나 아트페어에서도 인기다.

단색화의 대표 작가인 박서보의 작품은 지난해 경매에서만 120억원어치가 거래됐다. 단색화 거장 정상화 화백은 미국 뉴욕의 갤러리 도미니크레비(6월 1일~7월 30일)와 그린나프탈리(6월 1일~8월 5일)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뉴욕 갤러리 두 곳에서 한 작가의 개인전을 공동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교수는 미국 현지에서 한국 미술을 향한 관심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고 김환기 화백이나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인 이승택 작가는 소더비에서도 꼽히는 인기 작가다.

그는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이 한국 미술계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며 “미국 컬렉터들이 더 많은 한국 작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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