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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보제드사의 왕자"미보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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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보잉사는 세계항공산업,특히 민간용 대형제트기 분야에서 단연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보잉707에서 시작,최근 대형 참사를 빚은 보잉747에 이르기까지 보잉사의 제트여객기 시리즈는 세계민간항공기의 약 70%를 차지하며 거의 독점적인 아성을 구축해왔다.
보잉사의 84년 매출액은 1백3억5천4백만달러로 미국기업랭킹 29위에 올라있다.
총자산규모는 84억8천5백만달러로 미국내 33위고 84년중 7억8천7백만달러의 순익을 올려 순익랭킹 19위를 차지했다.
종업원수는 8만6천6백명.
83년에 비해 매출액은 다소 줄었지만 (7억7천5백마달러감소)순익은 3억5천5백만달러에서 2배이상으로 늘어난것이다.
80년대들어 민간항공부문의 침체로 어려웅을 겪어온 보잉이 성장의 템포는 더디어졌지만 착실한 수익성회복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이처렴 수익성이 개선된데는 「레이건」정부의 군비강화에 따른 군수부문의 호조에도 요인이 있지만 82년에 9만5천7백명이던 종업원을 이듬해인 83년에 8만4천6백명으로 1만여명이나 줄여버리는 감량의 고통스런 과정을 겪은것도 큰 보탬이 되었다.
보잉사는 그규모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우량기업이다.
지난78∼82년중 평균 자기자본이익률은 25%,평균매출성장률은17·4%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동업종의 라이벌인 록히드사나 맥도널드 더글러스의 실적을 훨씬 웃도는것이다.
보잉사의 84년도 매출액이익률은 7·6%로 미국국내96위에 랭크되었지만 미국제조업체의 매출이익률이 84년에 1·2%수준에 머무르고 있는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때문에 올 년초. 미국경제전문지 포천이 해마다 조사해 발표하는 미국내에서 선망받는 기업랭킹에서IBM·코카콜라등과함께 7위에 랭크됐다.
물론 항공업계에서는 단연1위다.
이처럼 보잉사가 질·양 양면에서 경쟁사를 누르고 절대우위를 차지한것은 수요가 불안정한 군수분야외에 민항쪽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왔다는데 큰 요인이 있다.
록히드나 맥도널드 더글러스의 군수비중이 50∼80%로 들쭉날쭉한데 비해 보잉은 민간부문이 전체매출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82년의 매출액구성을 보면 총매출 92억6백만달러중 민수쪽이 51억3천5백만달러,군수가 23억7천2백만달러,미사일및 자주부문이 9억3천8백만달러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민수부문의 비중이 전년에 비해 크게 떨어졌지만 판매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데는 변함이 없다.
보잉사는 지난1916년 「월리엄·에드워드·보잉」에 의해 설립됐다.
「보잉」은 30년대의 대공항을 겪으면서 더글러스사와의 민간기개발경쟁에서 뒤져위기를 맞기도했으나 이때 미육군항공대의 대형폭격기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고비를 넘겼다.
B-17, B-29, B-47등 우리 귀에도 익은 폭격기시리즈가 바로 보잉의 작품이고 이 시기에 보잉은 기술·생산력을 축적하여 정치·사회적으로도「강한미국」의 중핵적인 기반을 확보할수 있었다.
보잉사의 특징은 미국의 군수발주나 정부발주에 기술적인 기초를 두면서도 라이벌사에 앞서 군수의존 체질을 과감히 탈피했다는데 있다.
2차대전이후 군용기발주가 대폭 취소 또는 삭감되면서 대대적인 인원정리·시설감소의 곤경을 겪은 보잉은 50년대중반부터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노리고 대형체트여객기의 개발에 사운을 걸고 매달렸다.
57년 보잉707과 720의 개발에 이어 63년 세계항공시장의 베스트셀러가된 727형을내놓고 69년에는 747형을 내놓는등 속속 대형여객기개발과 판매에 성공하면서 80년대에 들어서도 미국시장의 70%,세계시장의60%률 차지하는 막강한 지위를 구축했다.
보잉사에 있어 군수는 극심한침체기에 최후의 도움을 주기는하지만 수요의 불안정때문에 평화시 민간기개발에서 이기지 못하면 생존할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있다.
이를 위해 보잉은 해마다 매출액의 8∼10%를 개발비로 쓰고있다.
보잉사의 골칫거리는 유럽4개국이 연합,참여하고 있는 에어버스 인더스트리의 급속한 성장이다.
민간기생산에서 철수를 시작한 더글려스나 록히드같은 미국내 경쟁사들은 일찌기 따돌렸지만 에어버스는 70년대말부터 무서운 기세로 도전해오고 있다.
영·불·서독·스페인등 4개국정부가 공동출자하고 있는 에어버스 인더스트리가 내놓고 있는 A300A형과 A310형기는 보잉이 80년대들어 신제품으로 내놓은 보잉747,767형기와 맞겨루면서 시장을 계속 잠식해 오고 있다.
특히 미국이외의 지역에서 고전이 계속되고 있다.
83년에 48억1천9백만달러어치를 수출,미국내 제2의 수출기업이던 보잉은 84년에 전년비 24.9% 줄어든 36억2천1백만달러를 수출하는데 머물러 GM·포드·제네럴일렉트릭에 이어 4위로 밀려났다.
총매출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내 대기업중 가장 높은 보잉의 수출감소는 매우 심각한것이다.
매출액중 수출비중은 83년에 43.3%에서 84년에는 34.9%로 급감했는데 이는 에어버스의 공세로 유럽시장은 물론 한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시장에서도 시장잠식현상이일고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어버스의 시장점유율은 76년에 3%에 불과했으나 그후 4개국 정부가 신기종 개발에 50억달러를 세출로 지원해 주는등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81년에는 55%를 기록,보잉의 38%를 따돌리고 우위를 차지했다.
보잉767과 A310형의 판매전은 83년부터 예측불허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적어도 60∼70년대 세계항공시장의 70%를 차지하던 막강한 지위는 흔들릴수밖에없는 실정이다.
보잉은 757,767형의 개발에 30억달러를 투입하면서 80년대 세계민간대형제트기의4O%가 대체돼 약3천기(1천2백60억달러)를 수주할수있을것으로 내다봤는데 에어버스의 대공세로 완전한 오산이 돼버렸다.
이에따라 보잉은 대규모의 인원정리와 함께 군수부문의 확대,금융차입등으로 현재의어려운 시기를 일단 넘기고 80년대후반에 예상되는 민간항공기의 갱신붐이올때까지 견디겠다는 전략을 짜고있다. 민간기부문의 감축등의 생각은 전혀없는데 다행히「레이건」정부의 군비확대정책이 요즘의 시련기를 이겨나가는데 큰 도움을주고있다.
보잉의 절대적 지위가 다소 퇴색해가고 있다고는 하나 유럽에비해 낯은 생산코스트,안정된 재무구조,아직은 확고부동한 네임밸류등이 어려움을 버텨나가며 80년대후반의민항기경신붐에 옛영화를 되찾겠다는 보잉의 기대에 가능성을 부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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