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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끊긴「금사경」되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금사경」(금분으로 불경을 베끼는 것)재현에 성공한 불교서예가 송파 윤장용씨(59·부산시 남구 남천동 보림선원)가 중앙일보창간 20주년을 기념하는 금사경작품을 제작했다. 순금가루를 먹물삼아 「반야심경」을 쓰고, 그 안에 중앙일보 새사옥을 그린 것. 금사경은 부처님의 진리를 설한 경전을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위해 옛날 왕실이 수년 혹은 수대에 걸쳐 호국호민을 기원해서 행해진 사경 불사다.
금사경은 1천3백여년전 당나라에서 시작, 신라시대때 전래되어 고려중엽에 그 꽃을 피웠다.
당시에는 왕실에서 국가적인 사경 불사를 벌여 스님들이 일평생동안 한 작품을 완성, 탑파에 봉안해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원을 세웠다.
금사경제작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숭유억불」정책으로 그 맥이 끊겨 현재는 호암미술관등에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10여점이 보존돼 있을뿐이다. 이같이 명맥이 끊긴 전통적 비법을 터득한 사람이 한국유일의 금사경서예가 송파 윤장용씨다.
부산 보림선원 보림회 부회장인 송파는 충북 보은출신.
어려서부터 선비인 할아버지에게 붓글씨를 배웠고 본격적으로 금사경을 시작한 것은 그가 불교에 귀의한 1970년부터의 일.
송파는 금사경에 매혹되어 은행원·제지회사 상무등 월급장이로 푼푼이 모은 재산을 없애 지금은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다는것.
송파가 지금까지 제작한 금사경은 모두 20여점에 이르지만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81년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한 제10회 불교미술전람회에서 『금강경8폭병풍』(순금사경)이 서예부 우수상을 받았을 때다.
그후 84년 제2회 불교문화예술대상전에서 『반야심경 및 변상』(105×52㎝)이 불선화부 대상을 차지했다.
첫번째 우수상을 받은 『금강경8폭병풍』은 제작하는데 꼬박 2년이 걸렸고 금분만도 8g이 들었다는것.
금사경 작업은 일반 서예처럼 줄줄이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깨끗이 하고 부처님 앞에 재배한후 시작한다. 삼선으로 마음을 평온케해 일체의 잡념을 버린후 맑은 마음으로 인류 평화를 염원하는 불심을 가지고 붓을 들어야한다.
금사경은 신앙의 경지, 예술의 경지, 금속공예의 삼위일체에서 성공할수 있는 숭고한 예도다.
수백자를 썼다해도 한 자가 틀리면 실격이다.
옛 고승들은 일평생 한 작품을 새겨 남기고 갈만큼 금사경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송파의 금사경비법은 접착제.
재래식 접착제인 아교나민어풀이 아닌 송파 독자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사경에 쓰는 금가루는 고급 약재에나 쓰이는 순도 99%의 특수미세분말.
사용할때 물의 온도가 너무 차면 그냥 굳어버리고, 너무 뜨거워도 자체 응고가 되어 적당한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붓도 털의 경도가 비교적 강해야만 글씨가 잘 나간다.
종이는 예부터 감지라는 중국원산의 닥종이(지금은 일본을 통해 중공에서 구입)를 써왔다.
금사경의 생명은 색이 변하지않고 오래 보존되는데 있다.
요즘와서는 아무렇게나 가금을 입혀 언뜻 보기에 순금보다 더 화려한 빛을 띠지만 이는 곧 변색해버린다.
송파 금사경의 특장은 순도99%의 금분을 쓰고, 이것이 오래가도록 개발한 「비장」의 접착제 사용에 있다.
우리고유의 전통예술이면서도 아직 관심밖의 분야로 취급받고 있는 금사경은 이제 불경만을 소재로 하는 예술에서 한차원 폭을 넓혀나가야 할것이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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