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서 날아온 대통령의 거부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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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대통령 ‘상시 청문회법’ 수용 않기로 결정
야 3당 “협치 파기, 20대 국회서 재의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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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초여름 정국이 얼어붙었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27일 오후 1시10분(현지시간 오전 7시10분) 에티오피아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再議) 요구안을 전자결재 방식으로 서명했다.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에서 ‘현안의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게 규정해 ‘상시 청문회법’이라고 불려왔다.

이에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26일 오후 4시 박 대통령에게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하겠다고 보고한 뒤 27일 오전 9시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안을 의결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전자결재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황 총리는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부의 국정 운영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견제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정부 법제처장도 기자회견을 열고 “‘현안조사 청문회’는 헌법에 규정된 국정조사를 형해화(形骸化)할 우려가 있다”면서 “‘소관 현안’이 포괄적이어서 기업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고 공조를 약속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고 비판했으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5·13 청와대 회동의 협치 정신을 찢어버리는 결과”라고 말했다.

우·박 원내대표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 야 3당은 “20대 국회가 개원(5월 30일)하자마자 야 3당이 공조해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대 국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해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이 가능한지와 관련, 제정부 처장은 “19대 국회 임기 만료(29일)와 함께 자동폐기된다는 견해도 있고, 20대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며 “국회가 판단해서 처리할 문제”라고 말했다.

아디스아바바=신용호 기자 서울=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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