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기문 대선 도전 시사에 걸린 기대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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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방한 첫날인 2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도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어제는 “발언이 과잉, 확대 해석됐다”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분열을 시키는 사람이 리더가 돼서는 안 된다. 통합시키는 사람이 돼야 한다”며 통합 리더십 언급을 이어갔다. 그는 전날 “누군가 대통합을 선언하고 국가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며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제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전의 발언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다. 누가 들어도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온 나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그의 “확대 해석” 운운은 큰 파장에 대한 수위 조절로 보인다.

반 총장의 국내정치 분열·대통합 리더십 언급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따지고 보면 반 총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사실 자체가 우리 정치권의 취약성을 방증한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가 정치권 밖의 반 총장을 유력 주자로 떠올린 에너지원(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의 급부상이 한국 정치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거기에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10년 경험은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현안과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 반기문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임명직을 거듭하며 쌓은 대중적 명망은 ‘관제화된 인기’일 뿐 대선 전쟁터에 뛰어드는 순간 높은 지지도는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분5열된 국내 정치세력을 통합하고 조정할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고, 경제나 민생 이슈엔 별다른 경험도 없다. 무엇보다 지역과 이념 통합, 남북통일 시대의 리더십을 내세워 제3지대에서 대선을 도모하려면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켜야 한다. 기존 정치권에서 대선 후보가 되려 해도 여든 야든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어느 길이든 국내 정치 환경은 녹록지 않다. 차차 지켜볼 일이다.

다만 대선이 1년7개월이나 남은 상황이다. 손학규 전 대표의 정계복귀 시사 발언에, 반 총장의 대선 언급까지 더해져 대한민국 대선 시계는 불가피하게 빨라졌다. 대선 전망과 논란으로 날이 샐 판이다. 당장 친박과 충청권 의원들은 반기문 띄우기에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총선 대참패 후 아예 자포자기 상태더니 반성과 쇄신은 팽개치고 ‘반기문 대망론’에 호들갑이다. 반대로 야권은 지나친 흠집내기와 견제에 열을 올린다. 반 총장의 때이른 대선 언급이 이런 과도한 대선 관측과 논란으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니다. 유엔 총장 임기도 7개월이나 남았다. 앞으로 총장 역할 수행이나 국가 이미지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정치권이 총선 민의를 받아들여 자성과 쇄신에 집중할 때다. 안보와 경제의 복합위기를 돌파하는 길은 거기서 찾아야 한다. 반기문 논란은 아직은 성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