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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밤의 언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늦은 밤, 잠을 청하여 일찍 동트는 여름 채광에 눈 뜨는 그 엷은 수면을 이즈음 밖의 빗소리가 자주 깨워놓는다.
반갑잖은 홍수 소식의 기억부터 가느다랗게 울려주면서 눅눅한 냉기를 몰고 오는 장마비소리. 한번 잠깨면 날이 새도록 습습한 빗소리를 쫓게 마련이고, 그리하여 낮시간에 대충 접어 두었던 사념들의 꾸러미를 풀어놓게만 된다.
세상은 분명 급회전으로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멀미앓이에 시달린다. 그러한 세상사중에 비와 어둠이라는 두 겹 장막에 덮인 밤의 정황은 야릇하게 통일감을 자아내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준다.
유리창 너머 밖을 내다보면 천지는 흐린 수묵색으로 풀어져 커다랗게 유순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순하디 순한 양떼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비와 어둠에 전선을 내맡긴 밤 품경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헐렁하고 편안한 허락의 자세같은걸 보게 되며, 그리하여 아주 좋은 의미에서의 몇몇 어휘들이 물방울 떨구이듯이 후두둑 가슴 속으로 빗발져 온다. 이를테면 「정적」「우수」등속의 별다르지도 않은 말이 그것이다.
말에는 세태에의 낯가림이 있는 법이어서 오늘의 현실 안에선 그 오늘을 못견디는 언어들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말의 순절을 훼손하고 과민 급하여 구석에까지 떠밀린 일은 없었는지. 혹은 공연히 기죽어 주어를 바꾼 일은 없었는지를 자성의 거물에 비춰봐야 한다.
우수니 정적이니 하는 말도 작금의 기후에서는 어설프고 어눌하다. 아슴히 잊어온 옛 습성속의 언어라 할만큼 일상성에서 벗어나 있고 추상개념이나 비생산성을 지적받을 여지도 있을 듯 싶다. 근자에 와선 몇 낱의 어휘가 도처에 도색을 입히는 중에 이와 반비례로 시대착오시되는 말들이 현저히 드러남도 사실이다. 그러니만큼 이에 생각해 보고자 한다.
가령 예를 들어 「우수」란 좋은 언어고 인격 안에 필히 갖추어야할 성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수를 모르는 사람, 우수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를 상상하고 싶지가 않으며 그런 사람이나 그런 시대가 있다면 결코 사랑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여름밤, 빗소리로 하여 불면을 복습하는 일인들 좋지 않으냐고 말하련다. 평가절하가 돼버렸는지도 모를 낱말들을 가슴 속에 주워 담으면서 마음 훈훈해 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련다. 우수·정적·화해·용서·포옹, 이런 말들이 마치도 세월의 밑바닥에서 깃을 치며 날아으르는 듯싶다.
「늙고 지혜로운」 말들을 젊게 회춘시켜 저 눈시린 처녀지의 창공으로 날려보내는 일이야말로 바람직하리라. 한 폭의 피륙으로 이어진 유순한 융합의, 비를 맞는 야경이 지금 이러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김남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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