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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 (2) 변순철 사진작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포브스코리아는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남성 명품 셔츠 S.T.듀퐁 클래식과 함께 오랫동안 한 가지 업에 매달려온 다양한 업태의 장인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철학을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는 변순철 사진작가다. 변 작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책무로 여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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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 작가가 자신의 작업물이 담긴 필름 박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작업물은 호기와 허기의 흔적들이다.

2005년 추석 특집방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 1260명을 촬영했다. 그것도 자비를 들여 쫓아 다녔다. 전에는 혼혈 커플을 촬영했고 지금은 실향민을 촬영 하고 있다. 변순철 작가. 그가 가진 사람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문화, 역사로 확장됐다. 왜? 그가 셔츠에 새긴 직업 철학 ‘호기와 허기’가 대답이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그의 작업 공간에서 송길영 부사장과 만났다.

'전국 노래자랑 10년, 변순철의 호기(豪氣)와 허기(虛飢)'

송길영: 호기와 허기. 재미난 말이다.

변순철: 나는 삶을 통해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기와 허기는 그 삶에 필요한 것들이다.

송: 스티븐 잡스의 ‘갈망하고 우직하게 일하라’가 생각난다.

변: 예술가들에겐 꼭 필요한 말이다. 호기와 허기는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할 멋이기도 하다.

송: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

변: 뉴욕 유학시절부터. 남녀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 서로 관찰하고 집중, 몰입의 단계로 이어지는 것처럼 호기심은 예술의 첫 단계다. 호기심을 진정성 있게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송: 애정이 있어야 관찰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으로 『관찰하라』는 책을 썼다. 유학생 시절에 대해 더 이야기 해 달라.

변: 데이빗 암스트롱(David Armstrong)이 내 스승이다. 우리는 흔히 “누구누구 밑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암스트롱과 제자들은 나를 동료로 대했다. 제약받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니 작업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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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송: 스승과 제자가 공급자와 수용자 관계라면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수평적인 관계로 배울 수 있었던 게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변 작가에게 영향을 준 다른 스승이 있다면.

변: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20세기 미국 인물사진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당시 니콜 키드먼과 조디 포스터가 서로 다이안 아버스역을 맡겠다고 나서 화제가 됐다. 모피백화점 러섹스 사장의 딸로 태어났지만 사진 예술가로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녀의 사진전이 로마에서 열렸는데 단일 전시로는 가장 많은 관객이 찾았다. 인물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접하게 되는 인물이다. 나 역시 그의 사진에 영향을 받았다.

송: 미국까지 가서 사진 공부를 한 이유는 뭔가?

변: 미국은 사진을 좋아한다. 사진의 출발은 인물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인 셈이다. MS, 애플과 같은 기업은 지금도 엄청난 돈을 미국 국제사진센터에 후원한다. 사진 센터가 내세우는 근본 정신인 ‘인간’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예술이 생겨났으니 당연한 거라 생각하지만.

변순철 작가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이다. 군 입대 후 스키부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막사에 난 불을 피해 지붕에 올라갔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온몸에 불이 붙고 척추를 다쳤다. 1년 2개월 동안 수도통합병원에 꼬박 누워만 있었다. 누워서 골똘하게 사진집만 쳐다보다가 사진에 입문하게 됐다. 소설같은 얘기다. 변 작가는 이후 도미해 뉴욕 데이빗 암스트롱 작업실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공교롭게도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자신이 머물던 아파트에서 두 번 더 화재를 경험했다. “그러니까 내 삶에서 화재를 세 번 겪으면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열정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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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직면의 예술, 꾸미고 덧붙이면 왜곡돼
송: 사진작가이니 묻고 싶다. 인물과 사물, 어떻게 다른가?

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을 찍는 거다. 사물도 메타포다.

송: 사람의 표정, 생각의 변화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어떻게 사진에 담는지 궁금하다. 변화를 포착하는 감은 타고나야 할 것 같다.

변: 사진은 백만 분의 1초를 정지시켜 보는 것이다. 직면한 예술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시적이고 직면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송: 꾸미지 않는 건 양쪽 다 필요할 것 같다.

변: 자동차도 기본형이 가장 예쁘다고 하지 않나. 꾸미고 덧붙이다 보면 왜곡된다.

송: 벤츠 지바겐은 디자인을 30년째 안바꾸고 있다. 처음에 깊이 고민한 뒤 우직하게 끌고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변: 깊은 고민이라, 예술가라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외딴 곳에 밧줄로 묶여있는 듯 고립감과 함께 혼자란 두려움이 든다. 하긴 그걸 극복해야 점프할 수 있다. 화폭이나 기법에 진일보한 변화를 줄 수 있단 뜻이다. 어느 정도 인정받는 예술가도 두 세번을 점프 하는 건 어렵다.

송: 변 작가 말대로 하자면, 허기가 없어지니 고민도 적어지는 건가?

변: 그렇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밀도가 높아진다. 다른 말로 진정성이다.

송: 한 기업의 브랜드도 3년 이상 우직하게 해야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믿기 시작한다고 하더라.

변순철 작가는 미국에서 돌아와 ‘짝-패’라는 사진 시리즈로 알려지게 됐다. 한 공간에 사는 혼혈 커플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인이 아닌 여느 평범한 혼혈 커플이 주인공이다. 이후 10년 넘게 전국 노래자랑을 따라 다녔다. 그는 “소시민의 개인적 욕망과 민낯을 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 촬영은 올해까지만 찍을 거란다. 그 동안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모아 단편 영화로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송: 단편영화의 디렉터는 누가 맡나?

변: 내가 맡았다.

송: 그럼 사진 활동은 어떻게 하고?

변: ‘가상과 현실’이라는 주제로 가족을 북에 두고온 실향민들을 찍고 있다. ‘실향민’은 4~5년 안에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다더라. 현재 실향민은 6만명 정도인데 문제는 워낙 고령이라… 이 분들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일단 실향민 어르신을 먼저 촬영한다. 여기에 어르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70년 전 가족, 연인 등 사진 속 인물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현재의 얼굴로 변환해 실향민 어르신 사진과 합성하는 식이다. 재현된 리얼리즘 같은 거다. 지금까지 80명의 어르신에 대한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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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관심사에서 인물의 역사로 확장
송: 그러고 보니 변 작가의 주제가 개인적 관심사에서 인물의 역사로 작업이 확장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변: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니 점점 인간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 전국노래자랑 속 보편성은 출연자다. 마찬가지로 실향민 속에 역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역사를 채증하고 기록한다는 사명감인가?

변: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역사의 단편들 같지만 쌓이면 교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중요한 건 쌓는 동안 허기가 필요하단 거다.

송: 승자에게선 이노베이션이 나오기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변: 로마 시대를 포함해 시대의 영웅이 영원할 수 없었던 건 오만과 자만 때문이다. 프랑스 퐁피두 센터로 이름을 날린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배부른 돼지가 되어 아이디어가 없다”며 8년 동안 작업을 중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술가에게 밀도와 허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송: 지음(知音)이란 말이 있잖나. 예술가에게 밀도와 허기를 유지하려면 나를 인정해 주고 설명 없이도 해석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변: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미국 문화 비평가 중에 수잔 손탁(Susan Sontag)이 쓴 『해석에 반대한다』처럼 한 가지만의 해석은 좋지 않다. 내 경우 학생들이 농으로 하는 말 중에 의도를 꿰뚫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그래서 난 과제 후 평가보단 학생들의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송: 단순한 기술적 평가가 아닌 문제 제기가 중요하단 말로 들린다.

변: 그렇다. 기법이 아닌 자신의 생각(철학)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일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기 위해선 밀도를 쌓아야 한다. 그건 호기와 허기를 가진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진행 유부혁 기자·사진 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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