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미래 못 보는 에너지 공기업 개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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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경제부문 기자

“에너지는 30~4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 단기적인 시각으로 이거 팔고 저거 파는 건 해외 경쟁국에 목을 내놓고 쳐 달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9일 공개한 에너지 공기업 개편을 위한 용역 보고서 내용에 대한 성원모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의 평가다.

“민간 기업에 자산·개발권 등 매각”
용역 보고서에 “단기적 시각” 지적
가스·석유공사 통합 곳곳에 걸림돌
눈치보기식 구조 개편 지양돼야

지난해 한국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감사원 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산업부는 5억원을 들여 민간 컨설팅 업체에 조직 개편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는 해외 에너지 기업 한 곳에서 1조3371억원의 손실을 냈다. 석유공사는 2009년 캐나다 하베스트의 계열사인 날(NARL)을 1조3700억원에 사들였다. 계열사 실적이 나빠지자 석유공사는 2013년 미국 투자은행에 1000억원에 매각했다.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329억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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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보고서에는 각 공기업의 해외자원 개발 기능을 밖으로 빼 민간 기업에 이관하거나 조직을 통합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실 해외 자산은 민간에 매각하고 우량 자산은 민간에 운영을 맡기는 형식이다. 100% 지분으로 자원개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민간 투자 회사 참여를 끌어들이는 방안도 검토됐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자원개발 자산을 석유공사에서 가스공사로 보내거나, 아예 두 기관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는 계산이다.

장영진 산업부 에너지자원정책관은 “해외 주요 에너지 기업의 경우에도 유통 구조에서 도매와 소매를 모두 갖고 있는 경우 서로 완충 작용을 하면서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다만 보고서에는 조직 개편시 저평가된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조직 분리로 핵심 인력이 반발할 문제점도 제시됐다.

한 에너지 자원 전문가도 “공기업 조직 내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떼었다 붙였다 하는 구조조정 방식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성원모 교수는 “오히려 정부가 앞으로 에너지 공기업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손보거나 ‘해외 자원의 10% 유치한다’는 목표 지향식 의사 결정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해외 광구 등 공기업 자산을 민간에 매각하는 내용도 저유가 상황에 살 기업도 나오지 않는데다 장기 수익을 포기하는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1984년 유공에 입사해 싱가포르와 두바이에서 석탄과 석유 거래를 맡은 안희준 전 SK네트웍스 고문은 “중국과 일본은 최근 앞으로 다가올 고유가 시대를 대비해 자원 확보를 하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전 고문은 “이명박 정부 시절 에너지 자원 외교는 타이밍과 효율성이 맞지 않았지만 방향은 옳았다”며 “지금 나오는 에너지 공기업 조직 개편안은 방향마저 돌리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민간 기업이 내놓은 보고서를 토대로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6월 초 에너지 공기업 기능 조정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 방안이 눈치보기식 ‘냉온탕’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장기적인 시각과 기관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김민상 경제부문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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