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9마지기 채소」농사가 큰 즐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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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즈음 하는 일은 베란다에 9마지기 농사 짓는 일이요』
왕년의 야당 투사이자 6선 의원이었던 서범석씨(83·전 신민당지도위원)는 활기찼던 전날의 정치역정과는 대조적으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그마한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9개의 나무상자에 서 옹이 가꾼 무우·배추·파·열무가 자라고 있다.
『환경이 좋아야 좋은 사람이 되듯 토양이 좋아야 식물이 잘 자라는 거요.
그래서 상자 속의 채소가 잘 자라도록 부직토와 사질토·보통 흙을 섞어 좋은 흙을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일이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얘기다.
72년10월 유신 때 큰 충격을 받고 『이 땅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생각, 정년 정계은퇴를 단행한 후 일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피해왔다.
같이 정치를 하던 동지·후배들을 만나는 일도 가능한 한 피한다는 것.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조용히 지내는 게 좋지 않소. 만나고 싶을 정도로 존경하는 사람도 없고…』
정계 은퇴 후는 달성 서씨 대종 회일 등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80년부터 작년까지 대종회장을 맡아봤다.
정치를 하면서 타고난 건강만은 자신이 있었는데 노년에 다리의 신경통 때문에 내복약을 과용한 것이 위를 해쳐 82년에 위의 일부 절제수술을 받았다. 또 심장박동수가 떨어져 1개월 전 인공심장 박동 기 삽입수술도 받았다.
수술결과는 모두 좋아 현재는 건강하게 생활한다.
『건강유지의 요건은 마음의 평온과 자기존엄을 훼손시키지 않는 행동, 남한테 부끄럽지 않은 인격유지에 힘쓰는 거요.』
그는 정신적인 건강비결을 강조한다.
가파른 언덕에 있는 극동아파트(서울 서초동) 5층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운동에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파트언덕의 98계단과 1∼5층의 70계단을 합해 1백70계단 정도를 하루1∼2회 오르내린다.
또 1주일에 두 번 정도 인근 꽃마을에 가서 각종 꽃을 돌아보는 것이 큰 즐거움의 하나가됐다.
해방 후 초대여자경찰서장을 지낸 부인 곽경봉 여사(76)가 차려주는 대로 아침식사는 율무에 검정 깨·콩·들깨 가루를 섞어만든 죽을, 점심에는 빵, 저녁에는 밥으로 식사를 한다. 토마토와 야채샐러드 등을 가능한 한 곁들인다.
정치인으로는 민주당시절 창립한 「담수회」멤버였던 김영삼·이중재씨 등이 가끔 문안인사차 들른다. 서 옹은 2·12선거전에 찾아왔던 야당정치인들에게 야당통합을 역설했다고 한다.『70년도 40대 기수 론을 제창했을 때 일부정치인들의 거부반응이 상당히 심했지. 그러나 앞으로의 정치는 그 세대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당시의 내 생각이 오늘날 결실을 보았다고 할 수 있겠지…』서 옹의 담담한 회고다. <글 김광섭기자 사진 양원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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