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솔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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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품은 고유의 본원적 기능이 있다.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짜며 항공사는 정확하고 안전해야 한다. 그러나 경쟁을 전제로 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모든 상품의 본원적 기능은 거의 같아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광고는 제품의 본원적 기능을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해 구매를 설득하기보다는 이른바 '브랜드 이미지' 형성과 전달에 주력한다. 레브론 화장품의 창립자 찰스 렙슨은 "우리는 공장에서 립스틱을 만들고 광고에서는 희망을 판다"고 얘기했는데, 이 말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목이 말라 뭔가를 마시고 싶다. 코카콜라? 너무 보수적인 느낌이 든다. 게다가 미 제국주의가 연상된다. 펩시? 내가 과연 '새로운 세대'일까? 환타? 너무 어리다. 특히 청량음료 분야에서는 공략 대상의 생활방식에 맞춘 브랜드 광고가 대세를 이루어 왔고 그 어느 브랜드도 제품의 본원적 기능을 얘기하는 '촌스러운' 광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청량음료 광고의 금과옥조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노르웨이에 솔로(Solo)라는 청량음료가 있다. 처음에 솔로도 역시 '생활방식 광고'에 돈을 쏟아 부으면서 코카콜라.펩시.환타 등과 경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기만 했다. 궁지에 몰린 솔로는 다른 청량음료 브랜드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1994년 광고(사진)를 감상해 보자.

위엄 있게 보이는 한 노부인이 독창회를 하고 있다. 그 부인은 스스로 대단한 가수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음치다. 따라서 음정도 박자도 초월한 그녀의 노래는 듣기가 민망할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한참 노래 부르던 그녀가 멈추더니 피아노 위에 놓여 있던 솔로를 유리잔에 따라 마신다. 광고를 여기까지 보던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리라. '흥, 저 음료를 마시고 났더니 음정 박자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얘기로군. 뻔한 수작들이지'. 그러나 이게 어찌 된 노릇인가. 솔로를 마시고 계속된 그녀의 노래는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여전히 신경을 긁는 음치의 부르짖음일 뿐이다. 어쨌든 노래는 끝나고 관객들은 박수를 친다. '뭐야, 무슨 광고가 이래'하며 사람들이 어리둥절할 때 카피가 등장한다. "갈증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고치지 못하는 세계 유일의 음료, 솔로."

이런 '거꾸로 가기' 캠페인 결과 솔로는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96년에는 브랜드 선호도, 브랜드 인지도, 브랜드 수용도에서 코카콜라.펩시.환타를 모두 앞지를 수 있었다.

제품에 자꾸 덧칠을 하는 것이 현대 마케팅의 추세라고는 하나 솔직함과 진실의 힘은 언제나 유효한 것이다. 그래서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라는 서양 속담도 있지 않은가.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grapecom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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