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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만 되면 영어 시험 어려워지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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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 도입 2년

외고·국제고 입시 고려해 변별력 확보
수학·과학 쉬워지는데 영어 둘쑥날쑥
“불안해서 학원 안 다닐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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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라면서요. 그럼 부담을 줄여줘야 하잖아요. 근데 유독 영어는 3학년에 올라가면 다들 너무 어렵다고 난리예요. 난이도가 이렇게 들쑥날쑥하니까 불안한 마음에 학원을 안 다닐 수가 없어요.”(중3 자녀를 둔 강남구 역삼동 김모씨)

중학교 1~3학년 전체에 성취평가제(이하 절대평가)가 도입된 지 2년이 흘렀지만 일선 학교의 혼란은 여전하다. 특히 영어 시험에 대한 논란이 많다. 중2까지는 평이한 난이도를 유지하다가 3학년에 올라 갑자기 시험 난이도를 올리는 학교가 많다. 중3 영어 성적을 9등급제 상대평가로 반영하는 외고·국제고 입시 때문이다.

외고·국제고 입시만 내신 상대평가 반영

“3학년 시험 때만 되면 외고·국제고 준비 학생 부모님들은 영어 시험을 어렵게 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른 학부모들은 더 쉽게 내달라고 요구하니 난감할 때가 많아요.”

서울 강남의 한 사립 중학교 교장은 시험 때마다 학부모 민원에 매번 골머리를 앓는다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절대평가 취지대로 핵심적인 성취 기준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시험을 쉽게 내면 만점자가 많이 나와 외고·국제고 준비 학생이 피해를 보고, 어렵게 내자니 중·하위권 학생들이 피해를 보니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현재 중학교 전 학년에 적용되는 있는 절대평가는 기존 9등급제로 나뉘는 상대평가(상위 4% 1등급)와 달리 일정 기준 이상을 넘기면 동일한 등급(90점 이상 A)을 부여하는 내신 평가 방식이다.

문제는 이 절대평가 제도와 외고·국제고 입시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외고·국제고는 학생을 선발할 때 2학년 영어 성적은 절대평가를, 3학년 영어 성적은 상대평가 성적을 반영한다. 상대평가는 만점자가 4%를 넘어가면 1등급이 아예 사라져버린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권 외고 1단계를 통과하려면 2~3학년 영어 성적이 A·A·1·2는 돼야 안정적이다”며 “3학년 때 한 학기 3등급을 받으면 1단계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외고·국제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3학년 영어 시험이 차라리 어렵게 나와 변별력이 갖춰지기를 기대한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일임에도 교육부는 외고의 손을 들어줬다”며 “입시 제도가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옭아맨 대표적인 사례다”고 말했다.

강남선 영어 시험 어려운 학교 인기

국어·수학·과학은 사정이 다르다. 과학고는 수학·과학 성적을 절대평가 성적으로 반영한다. 하나고·외대부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도 중학교 내신(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을 절대평가 성적으로 평가한다. 영재학교도 마찬가지다. 일선 중학교에서 굳이 억지로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 변별력을 높일 필요가 없다. 정미선 서울 개원중(개포동) 국어 교사는 “옛날처럼 일부러 문제를 꼬아 낼 필요가 없다”며 “시험을 어렵게 내 달라는 학부모 민원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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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각 학교의 A등급 비율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본지와 교육업체인 종로학원하늘교육은 학교알리미에 공지된 서울 소재 383개 중학교의 국어·영어·수학·과학의 A등급 비율 변화를 살펴봤다. 한 해만이 아닌 연속성을 보기 위해 올해 2월 졸업한 학생들을 기준 삼아 이 학생들이 2학년 때와 3학년 때 A등급 비율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서울 소재 383개 중학교의 학교별 국어·수학·과학 A등급 비율은 꾸준하게 증가했다. 각 학교의 2학년 1학기~3학년 2학기까지 국어 A등급 비율은 평균 21.9→23.1→25.8→26.8%로 소폭이지만 착실하게 증가했다. 수학·과학도 이와 같은 추세다. 급격하진 않지만 확실하게 시험 난도가 조금씩 내려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만 유독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영어는 23.1→25→23.7→23.1%의 흐름을 보였다. 2학년 때는 쉬워지다가 3학년 때 난도가 올라갔다. 임 대표는 “2학년 때와 비교해 3학년 때 A등급 비율이 10% 이상 줄어든 학교가 34개교나 됐다”며 “같은 학생 집단의 변화를 본 것이기 때문에 시험 난이도의 급격한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많은 입시 전문가들은 “일부 중학교들이 외고·국제고 진학 실적 개선을 위해 3학년 영어 시험을 어렵게 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양천구·노원구 등 소위 교육 특구에서는 이런 학교들이 인기 학교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이미애 샤론코칭 대표는 “많은 학부모가 학교알리미에 들어가 3학년 영어 A등급 비율을 살펴본다”며 “3학년 영어 A등급 비율이 낮을수록 외고·국제고 진학 준비에 신경을 써주는 학교로 인식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고·국제고 진학과 관련해선 시험을 쉽게 내는 학교가 아니라 어렵게 내는 학교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일선 중학교의 영어 수업을 절대평가 취지에 맞게 정상화하기 위해선 외고·국제고 전형 방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안 부소장은 “외고·국제고도 2~3학년 성적을 모두 절대평가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육청은 곤혹스런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일부 학교에서 중3 영어 시험을 일부러 어렵게 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외고·국제고 입시에서 영어 성적을 모두 절대평가로 반영하면 동점자 문제로 변별력이 떨어져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고·국제고도 변별력이 문제라고 말한다. 한 외고 입학홍보부장은 “과학고·자사고는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고, 방문 면접 등의 방법으로 학생을 살필 수 있지만 외고는 영어 내신 성적과 학생부의 종합행동란만 볼 수 있는 구조”라며 “중학교 영어 수업 참여 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만이라도 참고할 수 있게 해준다면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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