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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입고 먹는데도 일본바람이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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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5년 수교를 계기로 정치·경제분야서부터 시작된 한일교류는 20년이 지난 오늘 의·식· 주 생활의전분야에서 일본색 범람이라는 심한 역조로 나타나고있다.
잇단 수입자유화·시장개방조치가 취해진 80년대 이후 더욱 가속된 역조현상은「문화식민」의 우려까지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상황.
채 씻어내지 못한 일제 35년의 앙금 위에 경제대국으로 변신한 일본의 상업주의 대중문화가 홍수로 밀려들며 젊은날의 향수를 간직한 노년은 물론 젊은 한글세대들까지「일본화」 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데도 이를 걸러내는 체계적 대응은 없다.
수교 20년은 그래서 우리에게 분별 없는 일본수용의 결과 일 문화권 편입으로 내닫는 역사의 방향상실서 깨어나야 할 주체적 자각과 조직적 노력의 출발점으로도 인식된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사미센(삼미선) 가락이 간지럽다.

<왜식이 일본요리로|나무젓가락도 수입>
생 대나무에 댓잎장식, 결 고운 미송 칸막이의 곰살맞은 실내꾸밈에 다다밋방, 등널의자,소나무잎 무늬를 수놓은 일본병풍…수박덩이 종이 등의 화사한 조명.
마치 일본의 고급음식점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서울 서초동 일본식당 1관.
『어서 오십시오.』
허리를 90도로 숙여 절하는 종업원의 인사법도 일본식 수입품.
지하의「로바다야끼」코너에선 원통형모자에 매화꽃 무늬 일본식가운을 입은 요리사가 구운 생선을 접시째로 길다란 나무주걱에·얹어 손님앞에 내놓는 일본식 서비스를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
지하1층, 지상5층 건물 전체를 일본식당으로 꾸미는데 20여억원이 들었다는 이 식당엔 하루평균 3백여명의 손님이 드나든다. 그중 95%가 자가용을 타고 오는 내국인.
60년대 초까지「왜식」이 수교 후「일식」을 거쳐「일본요리」로 격상되면서 일본의 「맛」은 어느덧 대중화의 추세.
서울 강남지역에는 빌딩 한채가 몽땅 일본식당인 대형 업소만도6∼7곳.
전국적으론 1천8백47곳이나 되는 일본음식점이 내국인의 혀에 일본맛을 익혀간다. 77년의 5백7곳에 비해 8년새 3배반이나 늘어난 숫자.
이들 업소는 실내장식은 물론 종업원의 복장·즙기·간장·된장 심지어 나무젓가락까지 일본에서 수입해 쓰는 곳도 많다.
업소에서 음식이름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말. 회보다는「사시미」, 구이가 아니라「야끼」 ·「니꾸나마」·「덴나마」… 일본식 음식이름이 거침없이 쓰이고 있다.

<음식족보 우열다툼|히트곡나와 대유행>
최근엔 우동·라면·국수 등 일본식 간이음식점도 큰 유행을 이뤄 젊은 대학생들을 단골로 끌어들이는 중이다.
동경식·대판식 등 족보가 우열을 다투는가 하면 삿뽀로·아따미 등 일본지명이나 상호도 경쟁적으로 나붙는다. 길 밖 간판에까지 일본문자간판을 내건 업소도 드물지 않아 마치 한국속의 일본.
지난4월엔 일본서 수입한「원료」로 1만2천원 짜리 우동을 만들어 판 영동의 우동집 주인이 물의 끝에 구속되기도 했지만 일본색은「마지막국경」이라는 미각에서까지 빠른속도로 국경을 허물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일본식음식점과 함께 일본바람이 일고있는 현장은 술집.
70년대 초 일본서 고안돼 폭발적 인기를 끈 가라오께 술집이 79년 부산에 상륙, 첫선을 보인 뒤 몇 해 사이 전국에 확산되며 음주풍습마저 바꿔놓고 있다.
서울의 2백여곳, 부산의 2백50여곳 등 전국적으로 7백여곳을 넘어서 늘어가는 가라오께 술집에선 70년대까지만 해도 눈치를 보았던 일본노래들이 공공연하게 연주되고 불려진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이쓰와마유미」(오륜진료)의 『연인이여』가「모르면 축에 빠지는」히트곡으로 보급되고 복사 카세트가 불티나는 등 일본노래는 젊은층에까지 확산되는 상황.
8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유행되고있는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극기훈련·합숙훈련 등 사원단체교육도 일본기업에서 시작된「지옥의훈련」등의 복사판.
생활속의 일제찌꺼기로 남았던「일본말」등은 아직도 각종 전문·기술 직역 등에서 공용어처럼 활개치는 가운데 70년대 이후 일본어 학습 붐이 말의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만 일본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80곳의 외국어학원가운데 77곳. 대학생 등 젊은이들의 수강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일의 교류는 범죄에서도 역조.

<인질·독극물범죄 등|잔악한 수법을 모방>
70년대의 잇단 인질난동·협박사건과 80년대 들어 천호동카바레 독극물사건·식품회사독극물투입 협박사건 등이 모두 일본범죄의 모방으로 지적됐다.
최근 들어 고개를 숙이기는 했으나 마약·보석밀매를 둘러싼 두나라 범죄조직의 거래는 때로 청부살인 등 끔찍한 범죄로도 드러나고 있다.
일본바람의 시작이었던 일본인관광객은 65년 5천1백10명으로 길을 튼 뒤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요정경기·기생파티·현지처의 명암을 아직도 그리고 있다. 20년 동안 한국을 다녀간 일본인 관광객 연인원은 6백90만명. 전체 일본국민의 6%남짓으로 집계된다.
김용운교수(한양대·수학)는 유사이래 최근의 1세기를 제외하고 전기간 한국은 일본 문화의 모태이자 스승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말초적인 일본의 저급 대중문화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상황은 제도적으로 걸르는 기능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학계와 기업·언론·문학 각 분야에서 공동보조의 극일운동이 이제라도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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