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통역 관광안내원 방은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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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관광안내원 유니폼을 입고 나서면 자신의 나이와 피로같은건 저절로 잊게된다는 방은선씨 (57). 일제식민 통치하에서 일본경찰에게 늘 들볶이던 친정오빠를 보고자란 방씨가 일본어통역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게된 동기는 독특하다.
『지난71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되자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걷잡을 수가 없더군요. 관광안내원이 되면 행여 남보다 먼저 고향(원산)땅을 밟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이상 망설일수가 없었어요』40세가 넘은 나이에 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관광안내원이 된다는건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반대하던 방씨의 남편도 부모님을 그리는 아내의 애틋한 마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72년 방씨가 일본어통역 관광안내원 자격증을 얻었을 때 그의 막내딸은 국민학교 5학년.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전국의 명승고적들을 안내하기 위해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할 때는 집안일이 몹시 마음에 걸렸지만 세딸은 오히려 그런 일을 해내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격려해주었단다.
그동안 미장이·농부·정치가·운동선수 등 각계각층의 관광객들을 안내했기 때문에 이젠 처음 만나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신분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방씨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을 안내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힌다. 경제대국의 국민임을 뻐기는 그들에게 한반도의 문물이 일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방씨 정도의 베테랑급 관광안내원은 월급과 수당을 합쳐 월5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지만 경력이 짧은 경우는 보수도 훨씬 낮은편. 관광안내원은 외국어실력에 앞서 유머·재치· 봉사정신, 그리고 무엇보다 긍지를 갖춰야한다는 방씨는『젊은 후배들도 그냥 돈벌이가 아닌 중요한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문제의 기생관광에 대해선 요즘 가족동반 관광객과 여성관광객이 늘고있으므로 차츰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가 소속된 여행사에는 마침 정년퇴직제도가 없으므로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관광안내를 맡겠다며『그러다 보면 부모님을 뵙게될는지도 모르죠』하고 웃는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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