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위자료 많아야 5000만원 예상…2억~3억까지 받는 명예훼손과 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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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판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다소 유사한 사건에서의 위자료는 수천만원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악의적 제조물 사고에 대해선 지금보다 위자료를 높게 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사 재량 발휘해 대폭 늘려야
일부선 “징벌적 배상제 도입을”
피해자들 손해배상 소송 본격화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100여 명이 10~20명 단위로 국가 및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여기에 또 다른 피해자 및 유족 436명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통해 16일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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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소송의 최대 관심사는 법원이 정신적 손해배상(위자료)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다. 미국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방법은 법원이 위자료를 높게 산정해 주는 것이다. 신체적 피해로 인한 재산상 손해배상액은 기계적 계산법에 따라 결정되는 반면 위자료 결정에선 사건 성격과 피해 정도 등을 감안한 판사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의 재판 추세가 보여 주는 전망은 밝지 않다. 병원의 투약 오류 등 유사 사건에서 인정된 위자료는 많아야 3000만~5000만원 선이다. 피해자 의 정신적 충격이나 피해 정도보다 병원의 규모·응급대처 가능성 등 병원 측 사정을 더 고려한 듯한 판결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이 모발이식 수술 과정에서 투여한 수면 마취용 프로포폴 부작용으로 발생한 저산소증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병원 측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위자료는 3200만원이었다.

2014년 11월 창원지법 거창지원은 간호조무사가 향정신성 의약품을 과다 투여해 환자를 사망케 한 사건에서 관리 책임을 지는 병원 측이 5000만원을 피해자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 사건에서 많게는 2억~3억원의 위자료가 인정되기도 한 것과 대비된다.

신체 손상에 관한 사건에서 법원이 위자료를 소극적으로 매기는 건 판사들이 기준을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사건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들 사건에서 인정되는 위자료의 상한은 ‘피해자 사망 시 1억원’ 정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 측의 한 변호사는 “위자료가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억울함만 더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김제완 고려대 교수는 “양형 기준을 정하듯 사법부가 손해배상 사건의 일정한 유형과 기준을 정해 위자료 증액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홍기 건국대 교수는 “미국식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장혁·정혁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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