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아득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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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4강전 1국> ●·이세돌 9단 ○·커 제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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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보(141~154)=좌하귀 쪽에서 마름모 걸음으로 가만히 나온 44가 좋은 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런 곳을 쉽게 찾아 두는 것만 봐도 커제의 컨디션이 절정임을 알겠다. 흑△를 살려야 할 거 같은데 여기서 평범하게 ‘참고도’ 흑1로 움직이는 건 백2부터 8까지가 안성맞춤의 공격으로 탈출이 쉽지 않다.

우하 쪽 45, 47은 끝내기를 겸한 시간 활용. 이 한 호흡의 여유로 좌하귀 쪽 49로 먼저 끊고 51로 들여다보는 탈출 수단을 찾아냈다. 52로 따낼 때 53으로 눌러 유유히 빠져나온다. 일류 프로들의 바둑을 보는 재미는 바로 이런 수순의 정교함에 있다. 멋진 탈출수단을 보여줬으나 여전히 덤이 부담스러운 형세. 상변 무리한 침투가 두고두고 발목을 움켜쥔다.

흑이 만회를 기대할 곳이라고는 중앙뿐인데 54로 먼저 훌쩍 뛰어나오니 어수선하던 좌중앙 백의 형태가 안정되면서 오히려 흑 한 점(41)을 크게 노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아무래도 상변이 너무 컸어요. 저렇게 크게 들어가선….” 박영훈 9단이 말꼬리를 흐린다. 역전이 어렵다는 뜻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 아득하니 어쩔 것인가.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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