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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음주운전 혈중알콜농도 수치, 법원은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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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신 후 1시간을 전후로 혈중알콜농도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법원에서 이같은 과학적 결과 때문에 음주운전 사고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10일 오후 10시 46분 전라남도 장흥군의 한 도로. 나모(53)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 갓길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피해차량에 타고 있던 승객 2명은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언행이 어눌하고 비틀거리는 나씨의 모습을 통해 음주운전이 들통났습니다. 음주측정결과 나씨는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콜농도 0.117%의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검찰은 나씨를 음주운전과 음주교통사고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음주 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가 아닌 일정 시간 경과 후의 측정 수치가 단속기준을 초과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0.117%의 수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씨가 주장하는 최종 음주 시점은 사고가 나기 16분 전인 오후 10시 30분이었고 음주측정은 사고 35분 뒤인 11시 21분에 이뤄 졌습니다. 따져보면 마지막으로 나씨가 술을 마신 이후 51분이 지나서 음주측정이 이뤄진 것이죠. 광주지방법원의 1·2심 재판부는 “혈중알콜농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시기에 측정된 수치는 믿을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진술조서에서 나씨에게 술냄새가 났다거나 언행이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는 내용이 없었던 점도 나씨에게 유리하게 적용됐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에선 나씨와 비슷한 이유로 음주운전을 하고도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원심을 뒤집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나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혈중알콜농도 상승기에 측정을 했다는 이유로 언제나 운전시점의 혈중알콜농도가 처벌기준치를 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나씨의 혈중알콜농도 수치인 0.117%는 면허 정지 기준인 0.05%이상을 크게 넘는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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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나씨 언행 상태가 어눌하고 혈색이 홍조를 띄어 외관상으로도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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