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일러스트로 본 피아노 거장의 삶과 연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기사 이미지

글렌 굴드 : 그래픽 평전
상드린 르벨 글·그림
맹슬기 옮김, 푸른지식
140쪽, 2만1000원

1955년 6월, 뉴욕 CBS 스튜디오에 글렌 굴드가 나타났다. 6월인데도 코트에 모자,목도리,장갑으로 중무장한 그가 타월 한 무더기와 생수병 2개, 알약병 5개,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의자를 내려놓았다. 병중인 그의 녹음이 시작됐다. 굴드의 명반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상드린 르벨은 ‘이상한 수호천사’ ‘뉴욕의 동물원’등으로 꾸준히 반향을 일으킨 프랑스 만화가다. 굴드의 열렬한 옹호자인 르벨은 전기,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의 기록을 참조해 10여 년 넘는 작업 끝에 이 그래픽 평전을 완성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에 이어 30개의 변주 후 다시 아리아로 돌아온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닮은 굴드의 인생이 인상적인 일러스트로 펼쳐진다.

르벨은 굴드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 말년과 그의 장례식까지 자유롭게 시공을 넘나든다. 굴드는 가지고 다녔던 피아노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녹음할 때도 끊임없이 흥얼댔다. 짐꾼들이 실수로 피아노를 망가뜨리자 우울증에 빠지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아프게 한다, 어둑한 그림의 톤에는 고독과 예민한 감수성이 배어있다. 굴드의 음악과 삶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잊히지 않을 장면의 연속이다. 번역은 충실하지만, 음반 표지의 작곡가 이름까지 한글로 바꾼 건 과유불급이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