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로 돌아 갈래요" 10대 남매의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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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 남매가 경찰관과 나눈 문자 [사진 광주 남부경찰서]

 

다시 시설로 돌아가고 싶어요."

광주광역시 남구에 사는 중학생 A양(14)과 초등학생인 남동생(12)은 간절한 눈빛으로 경찰관들에게 호소했다. 지난 3월 22일 "아버지의 방임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구청 측으로부터 받고 달려온 광주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송정희(51·여) 경위 앞에서다.

A양 남매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자녀들이었다. 정부와 구청에서 매달 110여만원을 지원받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함께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A양이 3살 무렵 이혼 후 집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에게 삶은 혹독했다. 알코올 중독에 당뇨 합병증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밑에서 밥과 빨래 등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자신이 없으면 진짜 혼자가 될 동생이 눈에 밟혀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혼 후 술에 빠져 살아온 아버지는 A양을 더욱 힘들게 했다. 2012년에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5개월 가량 입원했지만 술을 끊지는 못했다. 당시 남매는 그룹홈 생활을 하며 현재보단 나은 삶을 살았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관리인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마련한 소규모 시설이다.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밥을 굶거나 집안일에 억눌릴 일은 없었다. 남매가 "다시 시설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이유다.

A양 남매가 경찰관들에게 보낸 감사 편지 [사진 광주 남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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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에게는 마음의 상처 못지 않은 신체적 상처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쳐 엉덩이 살을 떼어내 발목에 붙였다. 4년 뒤에야 받은 합의금은 아버지가 다른 곳에 써버리면서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했다. 현재 A양의 오른쪽 발에는 피부 조직이 혹처럼 붙어 있다.

경찰과 구청을 비롯한 9개 기관은 A양 남매에 대한 지원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아버지는 지난달 25일 광주광역시 한 병원을 거쳐 현재 전남지역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A양 남매도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정원 초과 문제로 서로 다른 그룹홈에 가는 생이별을 했다. 남매는 아버지가 치료를 마치면 다시 모여서 살 생각이다.

송정희 경위는 "A양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건 재수술"이라며 "A양이 용기를 갖고 동생을 잘 돌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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