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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웅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려 명장 강감찬의 일화가 생각난다. 거란군과 싸우면서 포로로 잡은 한 병사가 강장군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저 장군은 키만 조금 작았으면 명장이 될텐데…』
귓등으로 이 말을 들은 강강군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키가 작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늘 강화 뒤꿈치를 돋우고 다녔다.
역사상 소문난 소인으로는 전봉준이 있다. 오죽하면 「녹두장군」이라는 별명까지 들었겠는가. 그 키는 짐작이 된다.
요즘 미국에선 개성있고, 연약하고, 여성적이고, 키 작은 사람들이 명경을 울리고 있다고 한다. 초대국 미국답지않은 얘기지만 USA투데이라는 신문은 그런 사람들의 이름까지 꼽았다.
6척 장신의 「존· 웨인」시대는 지나고, 지금은 5척 단신의 「더스틴·호프먼」 시대라는 것이다. 연예인만의 얘기가 아니다.
88년 미국 대통령후보를 꿈꾸는「하워드·베이커」의원(상원 공화당 원내총무) 은 자신의 작은키를 오히려 정치적 선전물로 삼고 있다.
『미국은 키 작은 대통령을 요구하고 있다』는 슬로건이 그것이다. 재정적자의 이상비대증으로 숨가빠하는 미국을 자신의 신장과 비유해 기묘하게 풍자한 말이다.
「베이키」의 키는 미국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 1백75cm보다 5cm나 작다.
범죄학의 창시자인 이탈리아 의학자 「롬브로소」는 일찌기 그의.명저 『천재론』에서 키 작은 천재들을소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아르키메데스」,「디오게네스」에서 「몽테뉴」,「모차르트」,「베토벤」,「하이네」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소인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키다리들을 격려하는 자료들도 있다. 1973년 1월6일자 파리마치지엔 이런 글이 실렸었다. 프랑스 고등학교 (리세) 졸업반학생 (17,18세) 들의 키를 분석한 기사였다. 우선 계층별로 상류출신의 자녀들은 하류출신보다 5cm가량 컸다. 1백78cm대 1백73cm. 중산층 자녀들은 키 역시 중간으로 1백75cm.
주택지별로도 키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파리의 고급주택가인 8구, 16구 출신은 서민층이 많이 사는 13구,19구보다 2∼4cm가량 컸다.
물론 이 자료는 출세도와는 상관없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머리이지 키는 아니었다. 더구나 21세기 같은 과학문명 집약시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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