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개발자금 조달…MB 때 3개로 쪼갰다가 박근혜 정부서 다시 합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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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책은행(國策銀行). 나라의 정책에 따르는 은행을 뜻한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말처럼 국책은행은 태생적으로 ‘관치’를 받는 구조다. 국책은행 맏형이 산업은행이다. 현재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 업무 분장에 ‘산업은행의 업무·감독에 관한 사항’을 맡는다고 돼 있다. 산은 관계자는 “100% 지분을 보유한 정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국책은행의 역할인데 비판의 화살이 산은으로만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영욕의 역사

산은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그렇다. 홈페이지에 1954년 4월 설립됐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뿌리는 조선이 국권을 빼앗긴 을사년 이듬해인 1906년 세워진 농공은행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해 산미증식에 자금을 대고, 강제 저축을 통해 전쟁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겼다. 60~70년대 경제개발이 이뤄지자 산은은 각종 국책 자금을 굴렸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외화 산금채를 발행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산은에 손을 댄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다. 정책금융 역할이 줄어든 산은이 시중은행과 경쟁하며 이런저런 마찰을 빚던 때였다. 곽승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2008년 1월 “산은을 민영화하고 확보한 자금으로 중소기업 지원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10월 산은금융지주-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로 나눠졌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산은 민영화를 포기하고 세 회사를 합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승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기업 구조조정과 시장 안전판으로 정책금융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5년여의 시간과 수천억원의 돈을 들였지만 지난해 1월 통합 산은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6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산은은 코너에 몰렸다.

금융노조 산은지부 양문주 수석부위원장은 “산은을 실험실 개구리처럼 떼었다 붙였다 했다”며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 지원을 결정해놓고 되레 산은에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주장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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