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가정집 개조한 사무실 '하우피스'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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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경영컨설팅 업체 '티 플러스'의 이동진(34)이사는 요즘 출근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새로 옮긴 이 업체의 사무실이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어서 집처럼 편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빌라촌에 있는 이 업체는 나무들로 둘러 싸인 50여평의 잔디밭에 녹색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목조 인테리어로 장식된 실내에는 방마다 커다란 창이 달려 있다.

李이사는 "석달 전까지 광화문 빌딩숲의 20층 빌딩으로 나갈 때는 지하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리 칸막이의 공간에 있는 게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마다 (내)집보다 더 좋은 집으로 출근한다"며 "넓은 방에서 좋아하는 고전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면 집중력이 높아져 업무생산성이 두배나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티 플러스는 15명의 직원이 지하 1층, 지상 2층에 13개 방을 쓰는데 각자 취향에 따라 방에 헬스 기구나 남성 화장품 진열장 등이 있다. 반바지를 입고 일하는 직원도 있어 재택근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직원들은 가정부 아주머니가 준비한 점심식사를 주방에서 함께 하며 주말 저녁에는 가족들까지 불러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이 업체의 최소영(35)대표는 "담쟁이 넝쿨로 덮인 담장에 서 있는 가스등들이 켜진 가운데 조그만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으면 주중의 스트레스가 봄눈 녹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崔대표는 "컨설팅업의 핵심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운치있는 주택을 사무실로 쓰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사무실 환경에 대해 컨설턴트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주택의 임대료는 수백만원 수준으로 강남의 50평 사무실과 비슷한 수준이며 관리비를 내지 않는 대신 경비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

티 플러스처럼 하우스(House)와 오피스(Office)를 합친 '하우피스(Houffice)'가 새로운 사무실 개념으로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원래 하우피스는 2000년 닷컴 열풍이 불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 기업들은 강남 주택의 임대료가 테헤란 밸리의 사무실보다 저렴하면서도 테헤란 밸리와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장점 때문에 주택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하지만 닷컴거품이 꺼지면서 벤처기업들이 하나 둘 강남을 떠나 하우피스 붐은 꺼지는 듯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경영컨설팅, 광고업체, 건축사 사무소, 출판사 등 창의적인 업종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우피스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인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은 4개의 계열사가 모두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삼성동의 다섯채의 주택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가 현재의 사무실로 옮기기 이전에 사용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영동전화국 뒤편 '등나무집'도 2층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었다.

화이트의 조동원 공동대표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명인 광고업계는 사무실 분위기부터 달라야 한다"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성이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건축사사무소인 지오디자인도 강남 테헤란 밸리에 사무실을 갖고 있었으나 1999년부터 벤처기업들이 이 지역에 몰려들면서 임대료가 두배 가까이 뛰자 논현동의 2층 단독주택을 빌려 사옥으로 쓰고 있다.

출판사 가운데도 가정집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김영사.솔 출판사.살림출판사들이 그러한 경우다.

서울 가회동의 한적한 주거지구에 자리잡은 김영사는 3층짜리 양옥을 쓰고 있다.

2층 테라스에는 키가 30m가 넘는 꽃사과 나무 밑에 잔디를 깔고 파라솔과 의자를 두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앞마당의 정원과 가회동 한옥촌 전경도 일품이다.

김영사의 권기현씨는 "출판업은 창의적 사고를 요하는 일이라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보다는 자연친화적인 주택이 일하는 데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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