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6)일제의 「검열표준」-제82화 출판의 길 40년(4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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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제는 출판물을 규제하는 법령만으로는 그 통제기능이 미흡했던지 법령과 병행하여 소위 「행정처분사례」와 「검열표준」 등 보다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만들어놓고 모든 출판물의 검열 부서인 총독부 도서과가 당시의 출판계를 시시콜콜 못살게 굴었는데, 이 사정이 어떤 것인가 살펴보자.
먼저 1929년께 작성된 「조선문간행물행정처분례」는 그 사례를 19항으로 정리하였는데, 내용을 보면 제1항에서 제8항까지는 형법 등 일반법으로 다툴 수 있는 일반적인 사항이고, 제9항「조선통치를 부인하는 기사」 와 제10항 「조선통치를 방해하는 기사」의 예를 다시 10개 사항으로 세분하고 있다.
이중 몇 가지 예를 들면 ㉮내지를 외국취급하고 또는 조선을 독립국가와 같이 취급하는 기사는 물론, 독립기원 또는 단군기원을 사용한 기사.㉯조선민족의 독립사상 또는 독립운동을 선전·고취하거나 선동 또는 찬양하는 기사.㉰조선민족의 경우를 극도로 비관하여 인심의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기사.㉱조선통치의 모든 정책에 관하여 악선전을 하는 기사나 배일사상을 선동·찬양한 기사가 그것이다.
또 그들은 전시에 대비하여 1936년 「검열표준」 이란 것을 내놓았다. 그 제1장엔 안녕질서(치안) 방해 사항을 무려 28종의 사례를 장황히 나열했는데, 예를 들면 『반만항일 (만주괴뢰정부수립을 반대한다는 뜻) 또는 배일을 시사·선동하거나 또는 이를 찬양하는 것 같은 사항』 하며, 『조선의 독립을 선동하거나 또는 그 운동을 시사 또는 이를 찬양하는 것 같은 사항』 등 시종 애매모호한 표현이 당시 출판의 암흑상을 말하고 있다.
또 총독부는 1939년 마침내 「편집에 관한 희망 및 지시사정」을 내놓았다. 전문을 보면 그 속셈이 가증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검열기준은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시세의 변천에 따라 당연히 변할 것으로, 이미 출판허가가 있었던 것이라도 차압 혹은 재판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니 이 점 오해가 없도록 주의하라』 이 지시는 모두 7개항목인데, 이중 「조선통치정신에 위배되는 기사」를 또 10개로 세분했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면 ㉮일한병합후 기술한 문장에 아조(우리 나라 조선왕조률 가리킴), 본조(아조와 같음)의 문구를 쓰지 말 것.㉯배일의 자료를 제공하려는 기사와 일한병합 전후의 내선 관계 사실에 대하여 비분강개의 문장·문구를 쓰지 말 것. ㉰일한병합에 반대한 인물의 성명을 다수 나타내지 말 것.㉱연호사용에 있어서 일한병합후 문장에는 원칙적으로 명치·대정·소화 연호를 쓸 것. ㉲내선관계문자에 있어서 일본내지·일본내지인·동경유학생 등 마치 내지를 외국과 같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온당치 않으므로 주의할 것 등이다.
이밖에 총독부는 「특수검열표준」이란 다른 차원의 잣대를 갖고있었다. 즉 1 출판의 목적, 2 독자의 범위, 3 출판물의 발행 부수 및 사회적 세력, 4 발행 당시의 사회사정, 5 반포구역 등이 그것이다. 이 특수표준엔 식민통치의 책략 같은 것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속담에 「오랏줄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감긴다」는 말이 있듯이 이와 같은 시대에서는 차라리 출판을 안 하는 편이 옳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찌하랴.
다음부터는 해방 후 역사 속에 점철된 출판의 길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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