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정은, 선대 그늘 벗어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 박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8호 3 면

6일 북한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원증을 들어 보이며 표결하고 있다. 김정은 오른쪽은 명목상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6일 개막한 노동당 제7차 대회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를 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권력을 잡은 뒤 5년 만이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사망한 지 13일 뒤에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최고사령관에 앉았다. 김정일의 직책 가운데 제일 먼저 차지한 자리다. 조선인민군 최고 통수권 자리를 비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당 총비서로 임명(1997년)되기 6년 전의 일이다. 국방위원장은 2년 뒤에 맡았다.


김정은은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당 직제상에 없었던 제1비서를 신설해 그 자리에 올랐다. 당 대표자회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에 열리며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의 긴급한 문제를 토의·결정하는 행사다. 김정은은 그동안 당대회가 아닌 당 대표자회를 통해 1인자가 됐던 것이다. 이번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북한 주민들에게 명실상부한 노동당의 ‘얼굴’이 되고자 했다. 김정일도 74년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확정됐지만 80년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결정됐다. 따라서 김정은도 당대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었다. 김정일은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된 뒤 83년 중국을 방문했다. 이는 당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대내외적으로 후계자로 선포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당대회 통해 권력 절대화 노려김정은이 앞으로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전망된다. 첫째, 집권 초반기보다 안정된 권력의 공고화를 바탕으로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김정은은 실제로 6일 당대회 개회사에서 “이번 당대회는 김일성·김정일주의당의 강화 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또 “위대한 수령들의 현명한 영도가 있었고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과 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의 위력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제4차 당 대표자회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지도사상으로 명문화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어왔던 그 길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것은 권력 기반이 약한 김정은이 당·군 원로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김정은은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이겨내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례로 지난해 5월 제4차 전국노병대회에서 북한 여성 빨치산의 대표 인물인 황순희(97)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이 김정은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황 관장의 ‘엄지척’은 김정은이 잘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전국노병대회는 항일 빨치산과 6·25전쟁 참전 노병들의 애국심을 강조하고 청년 세대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행사다. 김정은은 올 들어 김일성·김정일이 주요 원로들의 생일에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으로 생일상을 보낸 것을 따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로들에게 자신은 김일성·김정일을 잘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2월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의 95세 생일을 맞아 생일상을 보냈다. 유미영은 남편인 최덕신 전 천도교 교령과 함께 7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84년 북한에 들어갔다. 유미영은 김일성 훈장, 김정일 훈장,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김정은의 김일성·김정일주의 명문화는 김정일에게서 배운 것이다. 김정일이 74년 후계자로 확정되면서 먼저 한 일이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였다. 당시까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의 이름을 붙인 이데올로기로는 스탈린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정일이 주체의 사상·이론·방법으로서 김일성주의를 명명하고 이를 선포한 것이다. 김일성주의는 이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으로 이어졌다. 이는 사상에서 창조성이 허용될 수 없었고 중앙에서 하부말단까지 오직 하나의 사상만이 관통하게 만들었다.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김일성과 똑같은 높이에서 바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김정은은 노동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부쩍 강조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4일 노작(담화)을 통해 “당 건설과 당 활동을 오직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요구대로 진행해 당은 수령을 유일 중심으로 한 사상적 순결체, 조직적 전일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덧붙여 “당 건설에서 기본은 수령의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을 보장하고 그 계승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노동당 조선인민군위원회 연합회와 확대회의는 “첫째도 둘째도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일색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출판물로도 확산되고 있다. 조선노동당출판사가 김정은의 말을 모아 지난해 발행한 단행본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명언1』의 표지 윗부분에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가 적혀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74년에 했던 것처럼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위치에서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은 “이번 제7차 대회는 김정은에 대한 절대화 과정이며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위한 행사”라고 평가했다.


‘제2의 고난의 행군’ 언급둘째는 핵·경제 병진 정책의 확립이다. 김정은은 6일 당대회 개회사에서 “올해는 첫 수소탄시험과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 발사의 대성공을 이룩했다”고 보고했다.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채택됐다. 이는 김일성이 62년 12월 열린 노동당 제4기 5차 전원에서 채택한 ‘경제 건설과 국방 건설 병진노선’을 따른 것이다. 당시 김일성은 쿠바 미사일 위기(62년 10월 22일~11월 2일)와 한국의 군사정권 등장을 위기로 판단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김정은은 지금의 북한 위기를 62년과 같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끊임없이 북한 체제를 위협한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핵·경제 병진 정책을 선포한 이후 핵·미사일의 고도화는 소형화·경량화·다종화로 급진전하고 있다. 핵 보유로 미국의 침략을 막아냈다는 식으로 선전해 권력의 정당화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 보유의 정당성을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이 안정됐다고 판단하기 이전까지는 핵 고도화를 멈출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전 원장은 “강화된 대북제재로 주민들이 고통받겠지만 북한 당국은 그 책임을 반미·반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수단으로 선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주민들이 대북제재로 인한 고통의 책임을 김정은으로 돌려 급변 사태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북한은 강화된 대북제재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 외화벌이 등 해외와 연결된 경제 구조는 대폭 줄이고 자강력 제일주의 등 자력갱생을 강조할 전망이다. 해외 식당 등 외화벌이를 확대했더니 대북제재로 타격을 받으니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지난 3월부터 ‘군자리 정신’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평안남도 성천군 군자리는 6·25전쟁 때 맨손으로 무기를 생산했던 곳으로 군자리 정신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웅적 투쟁정신을 말한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군자리 정신,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언급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어려워졌다는 방증이지만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강조할 수 있는 명분”이라고 말했다.


고수석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ko.soos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