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통적 양적완화는 핵폭탄, 한국형은 스마트 미사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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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한국형 양적완화’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로 사그라지던 양적완화 공약을 대통령이 다시 수면으로 끌어올린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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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정부는 한국형 양적완화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첫 단계는 한국형 양적완화의 개념 정립이다. 양적완화라는 표현이 불러올 수 있는 오해를 없애야 정책에 탄력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한국형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제로금리’ 상황에서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전통적 양적완화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청와대 “구조조정 자금 마련용
제로금리 상황 돈 풀기와 달라”
“국책은행 부실 미리 대비해야”
“금리 내릴 여력 있어 시기상조”
경제 전문가들 입장 엇갈려

전통적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등을 매입해 시중 통화량을 늘리는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유럽·일본이 실시했다. 반면 한국형 양적완화는 돈을 무차별적으로 푸는 게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특수 목적을 위해서만 투입한다. 정부 관계자는 “전통적 양적완화가 핵폭탄이라면 한국형 양적완화는 스마트 미사일”이라고 강조했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가능하다. 우선 한국형 양적완화를 처음 제안한 강봉균 새누리당 전 선거대책위원장의 주장처럼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매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려면 한국은행이 정부 보증을 받지 않는 산금채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한은법은 정부 발행 국채나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하는 채권만 매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출자를 통해 산은과 수출입은행에 직접 자본을 확충하는 방식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은이 산은에 직접 출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산은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만 수은은 법적으로 지금도 한은으로부터 출자를 받을 수 있다. 정부 내에서는 산금채 매입보다는 출자를 통한 자본 확충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 관계자는 “산금채 매입은 산은의 빚이 쌓이는 문제가 있지만 출자를 하면 자본이 늘기 때문에 산은·수은의 건전성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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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적완화에 찬성한다”며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국책은행의 부실이 늘어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1.5%)를 몇 번 내릴 여력이 있는데 벌써부터 양적완화 카드를 쓸 필요가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양적완화를 하되 제3의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직후처럼 한은이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과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사들이면 한은법이나 산은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적완화 논의에 앞서 산은과 수은의 방만경영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신용호·이태경 기자 unipen@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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