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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인권 사각지대인 인천공항 송환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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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유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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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사회부문 기자

"5개월째 햄버거만 주는데 저는 ‘할랄(이슬람 방식) 음식’이 아니면 고기를 먹지 않아 빵만 먹고 있습니다. 송환 대기실의 한국인 직원이 저희에게 무언가를 설명해도 ‘시리아’만 알아들을 뿐이라서 매우 답답합니다.”

지난 20일 화상통화한 시리아인 A씨(23)는 절박하게 말했다. 본지는 A씨 등 시리아인 28명이 있는 인천국제공항 내 송환 대기실의 인권침해 문제를 25일자로 보도했다. 송환 대기실은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시설이다. 현행법상 설치·운영의 근거가 불분명해 사실상 방치되는 법의 사각지대다. 항공사위원회(AOC)가 관리하다 보니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 신청자 대기실’과 환경이 천양지차다. 같은 28~30명 정원의 공간이지만 송환 대기실에는 매일 100여 명 이상이 콩나물시루에서처럼 숙식한다. 난민 신청자 대기실에는 통상 10명 미만이 머물고 있다.

송환 대기실 이용자는 지난해 3만 명에 육박했다. 항공사들이 사비를 털어 외국인들을 돌봤다. 10여 개국 이상 ‘고객’들의 입맛을 전부 맞출 수 없어 식단은 햄버거 하나로 통일했다. 화장실에는 담배꽁초, 빨랫감이 마구 널려 있고 오물 등이 뒤섞여 있다.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이 집단 생활을 하다보니 범죄 위험마저 있다. 한번 입실하면 허락 없이는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다. 올해 3월 송환 대기실에서 생활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카자흐스탄인이 이 곳의 비인간적인 생활에 대해 현지 언론에 폭로해 대서특필된 일도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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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근본적인 원인은 법적 공백에 있다. 송환 대기실은 출입국관리법·난민법상의 어떤 보호시설에도 속하지 않는 ‘유령 공간’이다. 출입국관리법은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송환 의무’를 항공사 측에 지우고 있다. 교통·숙박비까지 부담하게 한다. 공항 내에 기거 시설을 설치·운영토록 한 규정은 없다. 그렇다고 송환 대기실에서 계속 버티는 외국인을 강제 퇴거하도록 하는 조항도 없다. 이는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미국·영국·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송환 대기실을 국가 비용으로 운영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강제 출국시킬 수 있다.

법을 고쳐야 하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손을 놓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입을 하고 싶어도 입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 세금으로 입국 불허한 외국인을 돌보기도 애매하다”고 했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 나가 같은 대우를 받더라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법무부가 관련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유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