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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느닷없는 ‘4·16 민주시민교육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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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명수
임명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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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수
사회부문 기자

세월호 침몰사고 2주기(16일)가 지났지만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정치적 논란이 계속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4·13 총선 직후부터 정치권에서는 세월호특별법 개정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서울·경기·광주 등 전국 시·도교육감 14명이 세월호 사고를 교훈 삼아 새로운 교육을 만들겠다며 ‘4·16 교육체제’ 선포식을 했다.

이날 선포식에서 206개 혁신 과제를 제시했는데 선거권 만 18세 하향 조정, 교과서 자율발행제 등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일으킬 민감한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이끄는 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연구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 교육감은 진보적 정치 성향이 짙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 교육감은 “(4·16 교육체제는) 입시와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살리고 공동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체제”라고 설명했지만 세월호 사고를 너무 정치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교육청과 관련된 교실의 정치화 논란은 이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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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교육감들이 20일 민주시민 교육을 강조한 ‘4·16 교육체제 선포식’을 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교육청]

세월호 사고 때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존치교실(4·16 기억교실) 이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존치교실은 다음달 중 안산교육지원청 별관 2층으로 임시 이전하고 안산시가 별도 부지를 제공하면 영구적인 추모관을 짓기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9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은 이 추모관의 명칭을 ‘4·16 민주시민교육원’(가칭)으로 정했다. “획일적이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에서 탈피하고 진영 논리가 아닌 성숙한 사회로 가자는 의미”라고 교육청은 주장한다.

추모관은 필요하지만 세월호 사고에 ‘민주’를 갖다 붙여 느닷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이인재 교수는 “민주란 단어는 자칫 진영 논리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안전한 사회 건설’이라는 세월호 사고의 근본적인 교훈을 퇴색시키지 않으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명칭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계획대로 민주주의의 대명사로 통하는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과 4·16을 무리하게 연결 지을 경우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할까.

사실 세월호 사고는 시민사회·정부·기업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물질만능주의가 초래한 합작품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 제도를 개혁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교육이 필요하다면 선진 안전교육을 우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물론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사한 사고가 절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미래 세대 교육에 정치 과잉 현상은 경계해야 할 문제다.

임명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