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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닻을 올릴까, 돛을 올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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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닻을 올린다’는 말을 쓴다. ‘돛을 올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출발하거나 시작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으로 둘 중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할까.

닻은 배를 한곳에 멈추어 있게 하기 위해 줄에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기구다. 갈고리가 달려 있다. 갈고리를 물속에 내리면 흙바닥에 박혀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배를 정박할 땐 이 닻을 내린다. 반대로 출항할 때는 박혀 있던 닻을 올려야만 배가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닻을 올리다’가 출발하다, 즉 시작하다는 의미의 관용구로 쓰이게 된 것이다.

돛은 배 바닥에 세운 기둥에 매어 펴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있도록 만든 넓은 천을 말한다. 바람을 받아 배를 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배가 출항하려면 보통 밑에 접혀 있는 돛을 잡아 올려 펴기 때문에 ‘돛을 올리다’는 표현이 아주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돛은 출항할 때 반드시 펴는 것도 아니고 운항 중에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돛을 올리다’가 시작하다는 의미의 관용구로 지정되진 않은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싶을 땐 ‘ 돛’이 아니라 ‘닻을 올리다’고 해야 적확한 표현이 된다.

다시 말해 ‘돛을 올리다’는 “돛을 올리고 배가 출발했다”에서 처럼 ‘돛’과 ‘올리다’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를 나타낼 때 쓰는 게 적절하다. “우리는 이제 막 닻을 올린 무역 회사에서 근무합니다”에서와 같이 ‘시작하다’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땐 ‘닻을 올리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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