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위임계약 맺은 채권추심원은 근로자, 퇴직금 지급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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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위임계약을 맺은 채권추심원도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휘를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채권추심회사들은 채권추심원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퇴직금 지급을 피해왔다. 이번 판결로 이 같은 업계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채권추심업자 김모 씨 등 3명이 중앙신용정보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김씨 등은 중앙신용정보에서 2005~2011년 채권추심원으로 일했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해 정해진 업무를 했고, 사무 집기와 교통비도 지원받았다. 실적을 못 채우면 부서 이동 등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계약 연장이 안 돼 일을 그만두게 되자 퇴직금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2013년 소송을 냈다.

회사는 퇴직금 미지급 근거로 김씨 등과 근로기준법이 아닌 민법에 따라 위임계약을 맺은 점을 들었다. 위임계약을 맺을 경우 계약 당사자 사이에 업무를 부탁하고 처리해주는 위임인·수임인 관계가 성립한다.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근로계약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김씨 등이 회사의 지휘를 받으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하다가 퇴직했으므로 근로자가 맞다”며 김씨 등에게 각각 940만~1600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김씨 등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가 김씨 등을 구속하는 취업규칙이나 내규는 없었다. 근로소득세와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도 납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조기출근·야근·토요일 근무 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관리를 받았으므로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인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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