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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인산가' 처음 죽염 만든 인산 김일훈 선생 탄신 107주년 행사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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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가는 오는 30일 경남 함양군 죽림리 인산연수원에서 인산 선생 탄신 107주년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는 축하공연, 기념식, 인산선생 묘소 참배 등 내용으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인산가]

인산가는 오는 30일(토) 경남 함양군 죽림리 인산연수원에서 인산(仁山) 선생 탄신 107주년 행사를 개최한다.

30일 경남 함양군 인산연수원
환자 돌보던 삼봉산서 축제도

 이날 행사는 인산의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1000여 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흥겨운 축하공연과 기념식, 인산선생 묘소 참배 등 내용으로 열릴 예정이다. 인산가는 음력 3월 25일인 인산 선생 탄신일을 맞아 선생이 말년에 수많은 암이나 난치병 환자를 돌보았던 경남 함양군 삼봉산아래에서 매년 탄신 축제를 열고 있다.

 인산가는 인산 김일훈 선생(1909~1992)의 차남인 김윤세 교수(전주대 대체의학대학원 교수)가 설립한 기업이다. 죽염업계 종가답게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인산 선생이 저술을 통해 제시한 천연 물질을 활용한 제품을 보급하고 있다.

인산가를 대표하는 제품이 바로 ‘죽염(竹鹽)’이다. 죽염은 천일염을 대나무통에 넣고 소나무 장작을 이용해 아홉 번 굽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인산가는 현재도 인산 선생이 제시한 방법 그대로 죽염을 생산하고 있다. 죽염은 인산 김일훈 선생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아들이자 현재 인산가 대표인 김윤세 교수에 의해 1987년 세계 최초로 산업화가 이뤄졌다. 죽염은 현재 전국적으로 약 50여 곳의 제조업체가 생산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화 됐다.

 인산 김일훈 선생은 이미 1970년대 초반에 공해독으로 인한 난치병의 증가를 예견하고 그 치료대책을 다양하게 제시했던 분이다. 1980년에는 암을 비롯한 현대 난치병의 치료법을 담은 『우주와 신약(宇宙와 神藥)』을, 1981년에는 역시 같은 내용의 『구세신방(救世神方)을 저술했다. 77세 때인 1985년, 인산은 당신의 지혜를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자신의 지혜와 경험방을 담은 『신약(神藥)』을 발간했다. 신약은 발간되자 몇몇 잡지들이 책의 내용과 인산의 행적을 대서특필했고, 난치병 환자들이 경남 함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타개한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많은 사람이 인산 선생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그의 의술은 물론이거니와 물욕을 초탈한 청빈한 삶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에게 처방만을 일러주며 약은 다른 곳에 가서 구하라고 하고 자신은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다.

인산은 일생 동안 배우고 노력하여 얻은 지식은 자기의 정신적 재산이지만 나면서부터 체득한 지혜는 인류 공동의 자산인 만큼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인산은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경험과 의료지혜를 세상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결심한 뒤 1986년 6월부터 전국 순회강연회를 시작했다. 1991년 5월까지 30차례에 걸쳐 전국의 주요 도시 그리고 미국과 중국까지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에서 녹음 된 인산 선생의 육성을 바탕으로 김윤세 교수는 『신약본초(神藥本草)』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해 인산의학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청년시절에 인산 선생은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이후에는 민초들 속에 묻혀 그들의 목숨을 구하고 돌보았다. ‘불세출의 신의(神醫)’라 불릴 만큼 천부적인 의술을 지녔지만 그것을 민족의 재산으로 여겨 대가 없이 베풀었던 사람이다. 인산 선생은 1909년 음력 3월, 함경남도 흥원군 용운면의 유의(儒醫)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모두 이름난 유학자이자 의학자였다. 네 살 무렵 말과 글에 눈떴다는 그는 일곱 살 되던 해에 비 개인 하늘의 오색무지개를 보고 ‘우주의 비밀’을 깨우친 뒤부터 환자를 구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산은 어떤 별이 지상의 물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꿰뚫어 보고 각종 신약(神藥)을 밝혀냈다. 그래서 인산의학을 ‘별의 의학’이라고도 부른다. 인산은 16세 때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변창호 선생이 대장으로 있던 ‘모화산 부대’의 일원으로 항일전투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과 병자구료로 나날을 보내다가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인산은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전전하며 막노동·사금 채취·채약 등으로 연명하면서 자연물의 약리 작용을 연구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숱한 병자를 구제했다. 인산이 죽염을 직접 만들어 병자를 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기념행사 참가 신청 1577-9585.

송덕순 객원기자 song.deoks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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