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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퓰리처상의 선택은 ‘동남아 노예 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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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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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의 퓰리처상 사진부문 수상작.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닿은 난민을 담았다. [AP=뉴시스]

미국 언론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이 올해엔 동남아시아 어업의 노예 노동을 파헤친 AP통신을 택했다.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는 AP통신이 18개월에 걸쳐 추적 보도한 ‘노예들로부터 나온 해산물’을 공공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1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퓰리처상은 올해로 100년째를 맞았다.

AP 여기자 4명 18개월 추적 보도
감금됐던 2000여 명 석방 등 파장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AP통신의 일련의 보도는 미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동남아 해산물이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등에서 납치되거나 인신 매매된 노동자들의 노예 노동의 산물임을 고발했다. 노동자들은 외딴 섬이나 어선에 감금된 채 기약 없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먹기 좋게 껍질을 벗긴 칵테일 새우엔 그들의 피눈물이 묻어있었다.

보도의 파장은 컸다. 해당 국가들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감금된 노동자 2000여 명이 풀려났다. 이중엔 어린이들도 있었고, 20년만에 가족과 재회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취재진은 마기 메이슨과 마서 멘도사 등 4명의 여기자들이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3000여㎞ 떨어진 벤지나섬까지 찾아가 노동자들이 우리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동과 폭력에 시달리다 죽은 노동자 60여 명의 집단 묘지도 알아냈다. AP통신은 취재 후 관련 정보를 당국에 알려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뉴스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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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는 감금된 채 어업에 동원되는 노예노동 보도로 수상했다. [AP=뉴시스]

올해 퓰리처상은 빠르게 진행되는 언론의 변화를 담고 있다. 창간 17개월째인 온라인 미디어인 마셜프로젝트가 또 다른 탐사보도 전문 디지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와 함께 해설보도 부문을 수상한 것이 단적인 예다. 두 매체는 범법자로 몰린 강간사건 피해자의 억울한 사연을 생생히 다뤘다.

전국보도부문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WP)는 데이터 베이스 저널리즘의 좋은 사례를 제시했다. 지난해 경찰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990건의 총격 사건을 전수 분석해 시리즈로 보도했다. 취재 과정에 70여 명의 기자가 투입됐다. WP의 경쟁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연방정부의 데이터보다 훨씬 깊이 있다”고 평했다.

NYT는 2개 부문을 수상했다. 군중이 저지른 젊은 여성 살해 사건과 아프가니스탄 사법시스템의 문제를 다룬 기사로 국제보도부문상을,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진 난민들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로 사진부문상을 받았다.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탬파베이타임스도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플로리다 주정부 후원 정신병원이 예산 삭감 때문에 위기에 처한 실태를 새러소타헤럴드-트리뷴과 공동 작성한 기사로 탐사보도 부문상을 받았고, 플로리다주 피넬러스카운티의 인종 분리 학교 정책이 나은 부작용을 다뤄 지역보도부문에 선정됐다.

속보부문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테러 사건을 보도한 LA타임스가 뽑혔다. 만평부문에선 새크라멘토비에 게재된 잭 오만의 만평이 선택됐다.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은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힙합과 랩으로 녹여냈다.

◆퓰리처상=미국의 저명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 창설됐다. 미국 언론의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뉴스·보도사진 등 21개 부문의 수상자를 뽑는다. 공공 부문 수상자에겐 금메달을, 다른 수상자에겐 1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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