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케이블, 골라보는 재미로 '쑥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일반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문화 장르인 방송이 최근 급변의 물살을 타고 있다.

소비자(시청자)의 수요와 관련 정책 등 외부 환경이 변하고 제작 주체인 방송사와 연예인.협찬회사들 간의 권력 구조가 달라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방송의 변화된 모습, 그 변화가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3회의 시리즈로 짚어본다.(편집자 주)

고려대 김소라(21.사회학과)씨는 지상파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밤 10시 전후로 집에 돌아오면 대개 MTV, m.net,KMTV같은 음악방송이나 EtN'생방송 연예스테이션'같은 연예정보물에 TV채널을 맞춘다.

모두 케이블 채널이다.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김씨는 "지상파 음악프로는 시간대가 안 맞고, 음악 사이에 진행자가 나오는 게 싫어서 중.고교 때부터 케이블만 주로 봤다"고 말했다.

출판기획자인 이원복(35)씨의 리모컨도 여간해서는 지상파TV로 돌아가지 않는다. 케이블TV 중에도 게임.스포츠.음악 채널 위주다. "게임 중계든 신작 정보든 언제나 기대하는 관심사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처럼 보고 싶은 채널만 '편식'하는 시청습관은 매니어들의 특징. 그러나 장르별로 전문화된 케이블채널의 '골라보는 재미'를 찾는 시청자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들에 따르면 케이블TV의 시청점유율은 최근 가파른 상승세다.

시청률 자체도 지상파는 수년째 제자리(23%)에 머물고 있는 반면 케이블은 2000년의 1.2%에서 올 상반기 7.0%로 4배 이상 늘었다(TNS미디어 코리아 조사).

일부 장르에서는 케이블방송의 인기가 지상파를 위협할 정도다.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이다. 지상파 방송3사의 애니메이션은 2년 전까지도 시청률이 최고 20%에 육박하는 인기를 누렸다. 요즘은 한 자리 숫자로 뚝 떨어져 고전 중이다. 반면 애니메이션 전문채널 투니버스는 케이블 방송 가운데 시청률 1위를 고수한다.

지상파 애니메이션이 가장 불리한 점은 방송시간. 학원 교습과 과외활동에 바쁜 요즘 어린이들이 오후 4시30분~6시의 '어린이 시간대'에 TV 앞에 앉기가 쉽지 않다.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4~12세 어린이들은 오후 7~8시에 TV를 가장 많이 본다.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지상파에서는 이 시간대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기 어렵지만 투니버스에서는 '포켓 몬스터'같은 최고 인기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24시간 방송하는 음악채널에 맞서자니 지상파 가요프로그램도 예전같지 않다. KBS 이문태 예능국장은 "요즘 가요프로그램은 오락물이 아니라 교양물"이라고 말할 정도다.

케이블채널의 '효자'인 외화시리즈들도 지상파에선 그런 대접이 불가능하다. 동아TV의 '프렌드', 홈CGV의 '앨리의 사랑만들기', 캐치온의 '섹스 & 시티'등은 낮시간뿐 아니라 지상파의 메인뉴스 시간대와 '주침야활'형 시청자들에 맞는 자정 전후 시간대에 편성돼 있다.

요즘은 지상파 방송들도 외화시리즈에 다시 눈을 돌렸다. OCN의 'CSI',홈CGV의 '몽크'가 각각 MBC와 KBS의 주말 낮시간 전파를 타고 있지만 강명석(27.방송작가)씨 같은 외화팬은 여전히 케이블 쪽을 선호한다. 생활리듬상 주말이라도 낮시간에 TV를 보기 힘들고, 성우더빙보다 자막방송을 보고 싶다는 설명이다.

현재 지상파 이외의 TV채널은 케이블과 위성을 합해 약 1백개에 달한다. 95년 케이블방송 출범 당시 29개에서 세 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채널.점유율 증가는 뉴미디어 도입 초기에 내건 '매체 전문화.다양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외화내빈'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우선 시청률이 상위 케이블 채널 10개 가운데 5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만든 드라마.스포츠채널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매체집중이라는 비판을 듣는 대목이다.

또 시청률 순위 1, 2위인 투니버스와 OCN의 점유율이 전체의 20%를 웃돌 정도로 케이블 채널 간에도 인기 편중이 심하다. 홈쇼핑이나 대기업계열 채널을 제외한 군소 케이블방송사는 여전히 재정이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케이블은 광고 단가가 낮아 전체 채널을 다 합쳐도 지상파 3사 광고수입의 10%정도에 불과해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할 여력도 크게 부족하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송종길 박사는 "케이블 점유율의 외형적인 확대가 내용면에서도 매체 다양화라는 궁극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