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판 트럼프' "대통령 되면 범죄자 처단해 피바다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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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능가하는 ‘막말 대선 후보’가 나타났다. 다음달 9일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 시장이다.

두테르테는 최근 공개된 유세 영상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는 1989년 다바오시 교도소 폭동을 언급하면서 당시 인질로 잡혔다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 재클린 해밀(당시 36세)에 대해 끔찍한 농담을 했다.

두테르테는 “그들(폭도)은 모든 여성 인질들을 성폭행했고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진압이 끝난 뒤 실려 나온 시신들 중엔 호주 선교사도 있었는데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국 여배우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폭도들이 줄을 서 그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너무 예뻤다. 빌어먹을 놈들, 시장인 내가 먼저여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영상 속에서 지지자들은 두테르테의 끔찍한 농담에 폭소를 터뜨렸다.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면서 필리핀은 물론 해밀의 고국인 호주까지 발칵 뒤집혔다.

대선 지지율 2위를 달리는 그레이스 포(47·여) 상원의원과 또 다른 대선주자 제조마르 비나이(73) 부통령은 “불쾌하고 역겨운 발언”이라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호주 언론들도 “희생자를 욕보이는 역겨운 발언”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농담을 한 게 아니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두테르테는 막말과 기행으로 인기를 모으는 정치인이다. 지방검사 출신인 그는 88년부터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의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가 인기를 모으는 건 각종 범죄가 창궐하는 필리핀에서 초법적인 범죄 소탕작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두테르테는 재임기간 동안 자경단을 조직해 재판 절차도 없이 1700명의 범죄자들을 처형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이 같은 탈인권적 상황을 고발했지만 중앙정부조차 그를 처벌하지 못했다.

두테르테는 “대통령이 되면 모든 범죄자들을 처단해 피바다를 만들 것”이라며 “범죄자들의 시체를 마닐라만에 처넣어 물고기를 살찌우겠다”고 공언해왔다.

민주화 30년을 맞았지만 필리핀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두테르테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막말을 했지만 금세 인기를 회복했다. 인구의 80%가 가톨릭인 필리핀에서 이례적이지만 그만큼 국민들이 부패와 범죄에 지쳐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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