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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 TV·영화로 상한가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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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동거 이야기를 다룬 MBC 월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사진)가 인기를 모으면서 인터넷 소설이 새삼 화제다.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이 원작이기 때문이다. MBC는 일요 아침드라마로 역시 인터넷 소설을 각색한 '1%의 어떤 것'을 방영 중이다.

인터넷 소설의 '바깥 나들이'는 영화 쪽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컴퓨터 통신 시절 수백만의 조회 수를 기록했던 팬터지 '퇴마록'이 1998년 7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폭제는 '엽기적인 그녀'의 그야말로 '엽기적인' 흥행 성적이었다. 김호식씨가 컴퓨터 통신에 띄운 코믹한 에피소드들을 토대로 만든 '엽기…'는 전국 4백90만명에다 홍콩.대만.일본 등 외국 시장에서도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얻어 한국영화 기획의 흐름을 바꿨다.

올해 '동갑내기 과외하기'(전국 3백20만명)의 성공은 인터넷 소설이 흥행 보증수표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현재 10여편의 인터넷 연재 소설이 시나리오 작업 중이거나 곧 촬영에 들어간다. 인터넷 소설은 '이게 과연 소설이냐'는 시비를 비웃듯 다이내믹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최근 여고생 귀여니(본명 이윤세)가 쓴 '그 놈은 멋있었다''늑대의 유혹' 등이 열혈 10대 팬들의 응원을 업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현상은 사이버 소설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이에 인터넷 작가 네 명을 초대해 그들의 육성을 들어보았다. '삼수생의 사랑이야기'를 펴낸 이원영(30.연세대 성악과 4학년), '옥탑방 고양이'의 김유리(26.소설작업 중), '키에누 리브스 꼬시기'의 이현수(필명.31.공무원), '백조와 백수'의 나영준(33.소설작업 중) 씨다. 이들의 작품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현수:주변에서 술 사라고 채근하는 이들이 늘었다.'책 인세 수입에, 영화 판권료에 엄청 벌었겠네'라며 부러움반 시샘반 물어오는데, 남의 속 모르는 소리다. 영화판권료라 해야 1천만~1천5백만원선인데 출판사랑 반반씩 나누면 얼마나 남겠나. 책도 참 안 팔린다. 그렇지 않나?

나영준:맞다. 출판사에 미안할 지경이다. '옥탑방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터넷 소설 작가들이 떼돈 버는 것처럼 인식된 것 같다.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돈 얼마 벌었느냐'며 야유성 메일을 보내올 때는 속이 상한다.

김유리:'옥탑방…'의 원작자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는데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돈 문제'로 흘러 솔직히 불쾌하다. 직장인한테 월급 얼마냐고 묻으면 실례 아닌가. 게다가 실제로 손에 쥔 게 많기나 하면 기분이나 좋지, 정말 실속 없다.

이원영:인터넷 작가들의 세계도 정말 치열하다. 하루에 수백건씩 올라오는 글 중에서 주목받으려면 머리를 싸매고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 소설은 왜 온통 코믹 로맨스에 가벼운 에피소드밖에 없느냐고 질타하는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사이버 독자는 호흡이 짧다. 심각하고 진지한 글은 선호하지 않는다. 좀 웃기고 유쾌한 글이다 싶으면 곧바로 뜨거운 반응이 오니까 더욱 자극적으로 되는 것 같다. 어떤 땐 솔직히 '어 이건 아닌데'라고 반성할 때가 있다.

나영준:특히 인터넷을 점령한 젊은이들이 로맨스는 자기 이야기라고 느끼기 때문에 대중적인 글쓰기의 단골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현수:요즘 사는 게 얼마나 힘든가. 그래서 어느 장르에서나 코미디가 통하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힘겨운데 소설이나 영화에서까지 심각하고 울적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겠나.

김유리:개인적으로 미스터리나 공포물을 좋아하지만 워낙 코미디가 주류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코미디는 진지한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옥탑방…'이 인기를 끈 것도 동거라는 무거운 주제를 웃음으로 포장해 부담없이 던지기 때문이 아닐까.

나영준:이 바닥이 치열하다는 건 어떤 작가가 뜬다 싶으면 사방에서 음해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현수:맞다. 어떨 땐 정말 무서울 정도다. 사이트마다 자기네 작가를 키우려고 다른 사이트 작가가 인기를 끌면 온갖 소문을 퍼뜨려 깎아내리려 한다.

이원영: 인터넷 작가도 연예인처럼 공인으로 행동해야 한다. 난 아예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계속 말꼬리를 잡고 물어지기 때문이다. 사생활까지 파헤쳐 괴롭히는 통에 견디지 못하고 사이버를 떠난 작가도 많다.

이현수:기분 좋은 일도 있다. 내 주소를 어떻게 알고 생일이나 기념일에 선물을 보내 오면 은근히 즐겁다.

이원영:지난해 추석 때 이야기를 하나 올리겠다고 해놓고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명절을 맞아 시골에 간 팬이 1시간 걸려 읍내 PC방에 갔는데 글이 안 올라와 있다며, '당신 프로 맞나''왜 약속을 안 지키나'라고 항의해 진땀을 흘렸다. 그런 열혈 독자가 있어 계속 쓰게 된다.

이현수:다른 분들은 처음부터 작가를 꿈꾼 것 같은데 난 얼떨결에 책을 낸 경우다. 처음 로맨스 문학 동호회에 가입해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을 읽다 나도 한번 써볼까 하고 시작한 게 책까지 내게 됐다. 지금도 내 책을 보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책으로 내니까 책임감도 덩달아 생겨 더 잘 써야 한다는 각오가 생긴다.

나영준:인터넷 소설을 읽다 보니 30세를 넘긴 이들을 위한 게 별로 없어 내가 해보자고 시작했다. 그래서 내 팬들은 직장인과 영업사원들이 많다. 팬과의 만남에서도 오직 술만 마신다(웃음).

김유리: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여겼다. 그러나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작가 등용문은 너무 좁고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인터넷에서의 작업은 '자 우리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라며 멍석을 까는 느낌이 있어 좋다.

이원영:난 천리안통신 시절부터 연재 소설을 올려 왔다. 이모티콘을 소설에 차용한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엔 기껏해야 웃는 모습(< <), 울적한 표정(-_-)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놈은 멋있었다'의 귀여니로 대표되는 10대 취향의 인터넷 소설은 이모티콘의 사용이 지나친 것 같다. 한 문장에 이모티콘이 서너개씩 나오기 때문에 도저히 독해가 안 된다. 인터넷 소설에도 세대차가 있는 것이다.

김유리:기성 문학의 권위주의 때문에 재능을 죽이는 작가들이 많다. 인터넷 문학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대중에게 맡겨둬야 한다. 인류는 결국 좋은 것을 선택하게 돼 있지 않은가. 대중적이란 걸 사악하게만 보지 말아야한다.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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