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부실』정리 비상 처방|조세감면규제법 왜 고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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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조세감면규제법개정을 서둘러야 할 다급한 입장이다. 개정의 초점인 부실기업 정리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일이 심각하고 급한 만큼 대책 또한 비상처방에 가깝다.
그 동안 부실기업 문제에 부닥치면서 세제 쪽에서 겪어왔던 장애요인들을 모두 망라해서 이번 조감법개정을 통해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부동산처분에 따른 법인세 및 양도소득세 감면은 그 동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아무리 소유 부동산을 팔라고 촉구해봐야 실적이 부진하니 어쩔 수 없이 가장 큰 장애요인인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세금 낼 돈으로 은행 빚을 더 갚도록 하자는 이야기다.
은행도 부실기업의 하나인 만큼 은행이 부실기업한테서 챙긴 부동산을 팔 때의 세금도 면제해주도록 되어있다.
또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 늘 말썽이 되어 온 부족자산에 대한 세금문제도 전 기업주에게만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어느 기업의 장부상 자산은 1천억 원인데 비해 실사해본 결과 8백억 원에 불과했다고 할 경우 부족자산 2백억 원에 대한 세금을 법인한테서 원천징수 시켜오던 것을 이젠 전 사주에게 물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기업을 인수하게 될 또 다른 기업은 그만큼 세금부담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문제의 기업이 기업주로부터 부동산을 넘겨받았을 때나 모 기업이 계열기업의 빚을 떠 안았을 경우에 대해서도 각종 세금을 면제해 줄 계획이다. 결국 부실기업이 빚 청산을 위해 응분의 노력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일체의 세금장애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꼭 부실기업이 아니더라도 재벌들의 계열기업 처분촉진을 위한 세제상의 지원도 열어놓았다.
예컨대 대기업이 계열기업을 정리해서 전문 주력업종의 투자를 늘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세액 공제 또는 특별 감가상각을 해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번 조감법 개정 계획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비단 세제상의문제뿐 아니라 종래의 산업정책 전반에 걸친 파격적인 조치가 된다.
조감법 개정내용이 워낙 포괄적인 대책을 담고 있는 만큼 그 동안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측이 별도로 추진해 온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은 저절로 없어졌다.
그러나 부실기업의 조세감면 혜택이 워낙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까닭에 그에 따른 사회정의나 형평 등의 문제점을 어떻게 합리화시키느냐가 과제다.
조세감면규제법이라는 법 자체가 그러하듯 공평과세의 원칙은 또 한차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게됐다.
건실한 기업은 또박또박 낼 세금 다 내는 반면 부실경영을 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폭적인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는 비난을 면할 도리가 없게 됐다.
개정안이 국회를 원만하게 통과한다해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일률적이 아니고 산업정책심의회가 산업 합리화 대상으로 지정하는 경우에만 해당되므로 앞으로의 운용과정에서도 상당한 분란의 소지가 생겨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합리화 대상으로 지정되는 기업이 얻는 혜택이 지금까지와 앞으로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무리를 해서라도 조감법을 이처럼 대폭 고치겠다는 속뜻이 부실기업 정리에 따른 전체경제의 충격을 최소화시키자는 데 있는 만큼 일방적인 혜택이 특정기업에 돌아갈 경우는 상당한 분란이 예상된다.
가공자산에 대한 세금을 기업이 아니라 전 기업주에게 물리겠다고 했으나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면세조치를 의미한다.
또 모 기업의 계열기업에 대한 빚 보증을 손비로 처리해 줄 경우 모 기업이나 계열기업의 기업주가 동일인임을 감안할 때 악의에 의한 탈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기업의 지방분산 대책도 이번 개정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지금까지는 공장을 지방에 옮기는 경우에 대해서만 세금감면 혜택을 주던 것을 본사 이전에까지 확대시키겠다는 것이다.
또 과거에는 부산 대구 지역은 혜택 대상지역에서 제외시켰으나 앞으로는 수도권만 떠나면 어디든지 괜찮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서울 본사를 부산 대구로 옮기면 지금까지는 등록세를 5배나 중과해오던 것을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소액 가계저축의 우대방안으로는 이미 알려진 대로 세금부담을 현행 16.75%에서 5%로 대폭 낮출 계획이다. 1인당 1구좌로 최고한도가 5백만 원이므로 4인 가족의 경우 2천만 원까지 5%의 낮은 세율을 적용 받을 수 있게된다. <이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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