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맞추기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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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육 정치부 차장>민한당의 해체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근인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정당질서와 정치인의 행동윤리에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와 걱정을 갖는 것 같다.
지난 4년간 제1야당이던 큰 정당이 하루아침에 백기를 들고 투강하는 장면은 단순히 처참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원래 신민당과 민한당의 통합자체는 하등 이상할 것도 없고 예정된 코스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민한당의 붕괴과정 및 신민당의 흡수태도, 김대중·김영삼씨의 배후작용과 민한당 당선자들의 지리멸렬상이 모두 상식만 가지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민한당 당선자 중에 통합에 대한 자기 나름의 논리를 지킨 사람은 거의 없었다. 『통합은 당대당으로, 예우를 받아가며 하겠다』던 조윤형 총재는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애걸복걸하며 두 김씨에게 강서를 갖다바쳤다.
또 집단지도체제로 당헌을 고쳐 민한당을 존속시키자던 범주류는 조총재의 「무조건 합당」선언 30분전에 선수를 쳐 탈당해버렸다. 두 김씨의 지시를 받들어 통합추진수권위만을 구성하자던 사람들은 조총재가 만든 수권위에 참석, 합당을 결의해놓고 하루 뒤 탈당했다.
그러면서 이들 3개 그룹은 서로 다른 그룹의 행동양태를 기회주의니, 또는 배덕이니 하는 논리로 비난했다. 상대가 먼저 약속을 깼기 때문에 나는 멋대로 행동해도 책임이 없으며 두 김씨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두 김씨는 마치 구단주가 운동선수 스카웃 하듯 민한당 당선자들을 다투어 빼내갔고 당선자들은 경배하듯 두 김씨의 명령(?)을 따랐다.
두 김씨의 비위를 거슬리면 야당 정치인으로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 같은 것이 짙게 깔려있었다.
개중에는 『빨리 들어오지 않으면 나중에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두 김씨 진영의 협박(?)에 치욕 같은 것을 느낀다고 고백한 사람도 있으며, 내신 『과연 이런 대접을 받고도 김씨들 막하에 가야하느냐, 우리가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회의하는 사람도 있다.
두 김씨에 대해 「호메이니」라고 부르는 것이 이제 자연스러울 정도가 됐다. 이들의 민한당을 분해하는 작업만 놓고 보면 철저히 카리스마적이었다.
이들의 완승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 이들의 힘을 경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흡인력에 의해 민한당이 일거에 빨려 들어가는 정치풍토가 과연 민주적인가 반문하고 매사가 이런 열풍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하는가고 느끼는 국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이번의 두 당 통합이 정치발전으로 연결될지, 정국 긴장으로 연결될지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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