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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돈과 아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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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 알의 도토리가 떡갈나무 된다』는 영국 시인의 시구가 있었다. 영국 속담엔 『쌓아두어야 가질 것이 생긴다』고 했다. 모두 저축의 미덕을 기린 얘기들이다.
19세기 영국이 세계 제일 가는 부국이 되었던 것도 이런 미덕이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요즘 경제기획원에서 발표한 도시 근로자 가계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 9만원의 흑자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살림살이에 쓰고 남은 돈이다. 총 소득의 23.8%면 버는 돈의 4분의1쯤 된다. 이른바 가처분 소득이다.
이젠 우리도 「배(복)의 시대」에서 「지갑의 시대」로 옮겨가는 단계에 온 것 같다.
이 돈을 모진 마음먹고 곧바로 저축하면 1년 후 적어도 1백만원의 목돈이 된다. 저축은 원래 「남은 돈」이 아니라 「아낀 돈」으로 하는 법이다.
우리 나라의 올해 국내 저축목표는 28.6%. 이 가운데 가계저축이 차지하는 몫은 9%. 이제 가계저축률을 1%만 더 올리면 우리 나라는 남의 나라 빚지지 않고도 나라살림을 꾸려갈 수 있다. 총 투자율(GNP의 29.9%)과 저축률이 같아져 우리 나라 경제를 우리 돈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대만은 그 점에서 모범생이다. 국내 저축률(31.6%)이 투자율(28%)을 무려 3%나 앞서고 있다.
대만의 원로경제학자 손진 박사(국립대만대총장)의 설명은 귀담아 들어 둘만 하다. 첫째, 대만 사람들은 기대소득보다 실질소득이 높아지자 그 여분을 소비에 써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을 한다는 얘기다. 실질소득이 기대치보다 많다는 얘기는 부러운 대목이지만 우리 나라 도시근로자 가구의 흑자증가를 보면 구태여 남의 나라만 부러워할 일도 아니다.
그밖에도 농촌저축이 많고 주택금융이 널리 보급된 것도 대만의 저축률을 높게 유지하는 주춧돌이다.
일본의 경우는 대만과 또 다른 특색이 있다. 일본의 고성장기인 50∼71년대 초, 일본의 가계저축은 18%였다. 경제성장률 10%의 저력이 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높은 저축률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밀어준 것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석유쇼크 이후의 일본 저축률이다. 1976년 이후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20%로 오히려 늘였다. 같은 기간의 경제성장률은 5%였다.
이것은 석유 쇼크로 약화된 경제성장력을 국민저축으로 보충해주었다는 얘기다. 바로 일본 국민의 강점이다.
물론 일본정부는 제도적으로 국민의 그런 미덕을 보호해 주고 있다. 우편저금, 은행예금, 사채, 재형저축, 1인당 합계1천4백만엔까지는 이자에 세금을 붙이지 않는다. 개미알 모으는 식의 국민저축이 가능한 이유다.
우리 나라 경제 관료들은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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