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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가 그렇게도 좋은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외화가 4백30억달러, 우리돈으로 35조6천9백만원, 이런 숫자를 들으면 그냥 아찔아찔하다.
그러니까 한사람 앞에 갚아야할 외국빚이 90만원이라하게되면 가만히 있을수 없게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불과몇평짜리 제집 한채도 못갖는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호화·사치·퇴폐·낭비하며 게다가 잘난체까지 하는 일부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왜 땀흘려 빚갚아 주어야하나? 하는 심리가 자꾸만 꿈틀거린다.
엄청난 외채보다 이 심리가 더 문제일수도 있다.
수출격감의 소리가 연일 들려오더니 최근에는 작년 한해의 외제소비품 소비액이 2조4천억원이나 되는데 앞으로 수입은 더 해야할 형편이라고한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것을 안사려고하며 쎈 나라에서는 자기네것을 더 사라고 큰 기침을 계속해대고 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이니 우리 것만 사달라고하는 것도 말도 안되는 얘기다.
우리같으면 그러겠는가?
게다가 우리 수준에도 흡족하지 않은 상품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왜 사겠는가도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는가.
늦은 감은 있으나 몇몇 업체들이 절약운동을 벌이고있다하고 여성단체에서 외제안쓰기운동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외제 안쓰는 것이 외채 갚는 길이라는 의식도 고양되고 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인데다가 휴전선이 있다.
어느 외국경제학자는 한국은 외채가 많아도 갚을 능력이 있다고 희망적으로 보나 빚은 빚이다.
빚장이 주제에 무슨 외제 억대의 가구며, 외제조명기구며, 외제브러지어며, 콜세트며…도대체 이런 것들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혹 상류층을 연상할지모르나, 나는 「정신적 퇴폐」로밖에 상상이 안된다.
돈도 돈이려니와 속옷까지 기십만원씩 하는 것을 사 입는 여성의 직업이 무엇일까?
또 그여성의 남편의 직업은 무엇일까?
대개의 사람들은 보다 편하게, 보다 아름답게 살고 싶어한다.
그 욕망이 인류 발전의 촉진제가된 것도 사실이다.
건전한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사치스러운것을 그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사치가 왜 나쁘겠는가?
나쁠리 없다.
다만 우리나라 사정이 사치할때가 아니니까 나쁘고, 그 부를 누리는 과정에 국민들의증오감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는 경우가 있기때문에 나쁘다는 것이다.
또 비록 옳게, 성실하게 번 돈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외제 사치품을 마음대로 쓸수있는 계제가 아니다.
개인의 사치가 국가경제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수입품 수입품하지만 간장·고추장까지 수입한다는데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간장이며 고추장은 우리 고유의 음식인데 이것이 어째서 수입품이되어 들어오는지. 외국인들도 그것을 먹는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본고장이다.
그것마저도 외국업체에 뺏긴데서야 보통일이 아니다.
업자들의 분발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외제 전기밥통 단체 쇼핑 때문에 법석친 일이있었다.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지방의 그 여성들을 혼자서 딱하게 생각했었다.
전기밥통은 오늘날 서민 가정의 필수품이다.
다른 엄청난 값의 사치품을 사오는 여성에비하면 오히려 주부다운 쇼핑이다.
생활필수품이 국산으로 만족할수 있었다면, 그 무게 나가고 볼품 없는 것을 왜 사가지고 왔겠는가?
상품은 좋아야 산다.
애국심이 충전해도 불량품은 쓸래야 쓸수가 없다.
또 외제라고 다 좋고, 다 잘팔리지는않는다.
두드러진 예로 몇해전수입과자가 전혀 팔리지않아 제3국으로 내보낸일도 있다.
외제식품중에는 기한이 지난것도 많다.
외제라고 덮어놓고 사는것은 어리석다.
시중에 나도는 화장품이며 술이거의 가짜라는 것도 보도되었고 정식으로 수입한 가정용품중에도 불량품이있은 것을 신문·TV를 통해 보았다.
오히려 국산 브랜드가 훨씬 값싸고 질좋은 것이 많다.
외국가서 애써서 스웨터고 액세서리를 골랐더니 국산이었다는 경험을 한 사람도 많다.
그래서 우쭐한 기분에 그것을 샀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어쩌니해도 국민으로서 긍지를 가질때처럼 든든하고 기쁠때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내 삶의 뿌리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국민학교 아이들이 국산불량품을 고발하는 장면을 TV에서 실감있게 보았다.
또국산이 외제보다 낫다는 어린이도 있다.
상품은 어쨌든 좋아야 산다.
외제배격운동은 반드시 국산질 향상과 병행되어야한다.
이번 기회에 국산품 제조업자는 아프터서비스를 철저히하고 또 값싸고 좋은 상품을만드는데 전력을 다해해야 할 것이다.
외제 안써서 외채갚는 길은 더 적극적으로 「외제사용은 수치」 라는 의식까지 뿌러내리게 하며 국산품품질향상운동과 병행할때라야만 밀려오는 외제를 누를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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