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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원 못 주는 업체 망해야” vs “1% 올리면 채용 6.6% 줄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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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11면

4·13 총선을 앞둔 여야가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경제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까지 현재 6030원인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까지 인상하겠다고 나서자 새누리당도 20대 국회에서 9000원 선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받아쳤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내수 확대를 통한 경제 회복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입장과 오히려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을 키워 최저임금을 받는 취약 계층의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정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처장과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이 7일 중앙일보에서 대담했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나왔다. 이정식=노동계에서 최근 몇 년간 시간당 1만원(주당 40시간 근로 기준 월 209만원)의 최저임금을 주장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은 경제논리보다 임금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과 문명화의 수준, 품격을 반영한다. 정권의 의지가 반영되는 측면도 강하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 각각 연평균 9%와 10.6% 올랐지만 이명박 정권 때는 평균 5% 인상에 그쳤다. 지금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나오는 것은 소득 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 구조, 경기 둔화 문제를 임금 인상을 통해 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하상우=최저임금은 시장주의 원칙을 거슬러 임금을 강제로 규정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경제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은 과도한 수준이다. 그동안 노동계는 근로자 평균 정액급의 50%를 최저임금으로 주장했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거의 여기에 근접했다. 그러자 노동계가 1만원을 들고 나온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했는데 이것도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1997~2006년 최저임금을 동결한 후 단계적으로 올렸다. 20년간 미국의 인상률은 40% 정도다. 같은 기간 한국의 최저임금은 330% 올랐다. 영국이 현재 6.7파운드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9파운드로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복지비용은 120억 파운드 줄인다. 인과관계는 따질 수 없지만 복지비용은 줄이고 임금을 올려 충격을 흡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최저임금 1만원이 과하다는 근거는. 하=최저임금은 지급 능력과 비교 대상에 따라 분석해야 한다. 우선 지급 능력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97%가 중소기업, 83%는 영세업체에서 근무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이런 영세 중소업체의 부담이 커진다. 감당할 수 없다. 외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낮지 않다. 단순 액수로만 따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회원국 중 중하위권이다. 구매력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 OECD 회원국 중 13위,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로 따지면 11위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생각할 부분이 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다. 한국은 기본급이 낮고 고정급을 제외한다. 이렇다 보니 연봉 4000만원인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것으로 분류된다. 미국 등은 고정급을 포함한다. 최저임금을 논의할 때 이런 측면을 살펴야 한다. 왜곡하면 안 된다.


이=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나온 단신 미혼 노동자 생계비가 2015년 기준 155만원이다. 현재의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 126만원)은 생계비의 80% 수준밖에 안 된다. 최저임금을 받아서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렵다. 최저임금 취지는 노동자의 건강한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시간당 1만원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영세한 업체는 망해야 한다.


하=최저임금을 못 주면 업체를 접으라는 주장은 경제논리로 보면 과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부정적이다. 김대일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1% 올리면 시간당 임금이 하위 5%인 저소득 근로자의 신규 채용이 6.6% 줄어든다. 지난해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가 429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4%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신규채용을 축소하고 현재 인력도 줄일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고 지급 능력이 부족한 기업의 부담과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이=중소 영세업체의 지급능력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구조를 통해 풀어야 한다. 대기업에는 현금이 쌓여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관계를 개선해 영세업체의 지급능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최저임금 적용 근로자의 84%가 서비스업 종사자다. 원·하청 관계가 적용되는 제조업 근로자 중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는 10% 정도다. 원·하청 관계가 최저임금의 핵심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를 살릴까. 이=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내수 진작을 위해 임금을 올려야 한다. 수요가 증가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물론 최저임금 준수 여부에 대한 감독과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자영업자가 어려운 것도 단순히 최저임금 부담 때문이 아니다. 정부 정책과 대기업의 횡포, 과당경쟁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결합해 시행해야 한다.


하=임금을 올려서 소득이 높아지면 경기를 활성화할 수도 있겠지만 임금이 오른다고 무조건 소비가 느는 것은 아니다. 소비를 하지 않는 건 불확실한 미래와 고령화 등으로 인한 소비 성향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그동안 꾸준히 최저임금을 올렸는데 경기가 활성화됐나.


이=소비 성향 감소는 해고나 실직 등의 불안을 줄이도록 고용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연금 등 사회안전망 확충 등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적정 최저임금 수준은. 향후 논의 과제는. 하=적정 최저임금을 말하기는 어렵다. 경영자 측은 다른 단체와 논의해 결정하게 된다. 다만 경영자 측은 영세업체의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최저임금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식비와 숙박비, 상여금 등 포함 여부)나 업종별·지역별 차등화 등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업종별 혹은 지역별 차등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합의하면 산입 범위나 업종별 차별화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상호 신뢰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후 관련 논의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하현옥·염지현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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