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대에도 「삼종지도」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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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고려여성에게도 삼종지도가 일반화됐으나 친정부모와 딸과의 관계는 훨씬 긴밀했다. 여성의 절개가 강조되었으나 고려 중엽부터 몽고족 풍습아 유입되면서 성윤리가 문란해졌다.
이와같이 한국중세 (고려)의 여성문제를 밝혀볼수 있는 『한국여성관계 자료집』이 간행되어 관심을 모은다. 한국의 중세를 조명해 볼수 있는 사료 『고려사』『고별사절요』 금석문 (묘비명)등에서 여성과 관계된 부분만을 발췌해 묶은 첫번째 책으로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소장정세화) 가 발간했다.
최근 발간된 중세편중 중권은 고려시대 후비·종실·공주·대신의 아내·열녀등의 개인적인 기록을 묶은 것으로 여성생활의 단면을 엿볼수 있어 흥미롭다.
문란해진 성윤리의 표본은 충선왕 (1308∼1313년)의 후비였던 이국 대장공주. 원나라 진왕의 딸로 고려에 시집왔으나 왕이 조비를 총애하자 친정의 힘을 이용하여 고려왕실을 협박했고 내관·신하들과 공공연히 통정했다.
은천옹주가된 임여인은 상인의 딸로 노비로 있다가 충혜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아 엄청난 신분의 격상을 이룬경우다.
기록에 나타난 열녀는 모두12명. 그중 호수의 처 유씨, 정만의 처 최씨등 9명은 모두 호난중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의의 처등 3명은 위기에 처한 남편대신 죽거나 함께 죽었다.
의종때의 최루백의 처 염경애의 묘지는 남편이 쓴 것으로 고생하다 죽은 아내에의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금석문은 고려사열부전의 관계를 밝혀 입체적 관찰을 가능케했다.
한국 『여성관계 자료집』상권은 세가및 지에서의 여성관계자료. 앞으로 나올 하권은 고려말 문집을 증심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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