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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움직이지 마! 벙커 밖은 위험하니까…'클로버필드 10번지' 캐릭터로 미리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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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단 세 명, 주요 배경은 지하 벙커. 이 단출한 구성으로 이렇게 짜릿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제작을 맡아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클로버필드 10번지’(원제 10 Cloverfield Lane, 4월 7일 개봉, 댄 트라첸버그 감독) 얘기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가 깨어나 보니 어딘가에 갇혀 있다. 여자를 이곳에 데려온 남자는 바깥세상이 모두 오염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다. 여자는 무엇을, 누구를 믿어야 할까. 세 주인공을 따라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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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로버필드 10번지` 스틸컷]


ㅣ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믿으라는 남자,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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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로버필드 10번지` 스틸컷]

좁고 어두운 방에서 깨어난 미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분명 사고당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게다가 다리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다. 그런 미셸 앞에 거구의 남자 하워드(존 굿맨)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깥세상은 엄청난 공격을 받았어. 방사능 때문에 여기서 못 나가. 다행히 난 대비해 왔지. 그래서 우리가 살아 있는 거야.” 하워드는 미셸에게 단단한 벙커 구석구석을 안내하고, 창고 가득 쌓인 음식을 보여 준다.

잠깐. 여기서 ‘클로버필드 10번지’(이하 ‘10번지’)를 두고 2008년에 나온 ‘클로버필드’(맷 리브스 감독)를 떠올렸다면 당신이 맞았다. 둘 다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제작을 맡은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다. “단순히 속편의 개념을 넘어 ‘클로버필드’의 세계관을 반영하려 했다. 2017년에는 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 에이브럼스의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두 영화는 등장인물도 줄거리도 진행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장르적 쾌감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다시 하워드로 돌아와,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을 비웃었던 이웃에 보란 듯이 야무진 벙커를 건설했다. 과연 하워드의 말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자, 다른 남자의 말을 들어 보자.


ㅣ 그를 의심하지 않는 남자, 에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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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로버필드 10번지` 스틸컷]

미셸이 깨어났을 때 벙커에는 하워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에밋(존 갤러거 주니어)이 그를 걱정스레 쳐다본다. ‘이 남자도 납치된 게 아닐까.’ 미셸이 의심하자 에밋은 말한다. “공격은 나도 직접 봤어.” 대체 누가 누굴 공격했다는 건가. 에밋의 말이 사실인지도 믿을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미셸에게 다정하다. ‘10번지’는 짜릿한 긴장을 안기는 동시에 웃음 요소를 곳곳에 심어 놓았는데, 에밋의 유머 감각이 발군이다.

이야기가 대부분 벙커에서 진행되지만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탁월한 연출과 유머 덕분이다. 댄 트라첸버그 감독은 e-메일 인터뷰에서 “잠수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 ‘붉은 10월’(1990, 존 맥티어난 감독) 같은 작품들을 참고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진행됐는데도 대규모 액션영화처럼 보여서다. ‘10번지’ 초반부에서는 카메라를 고정해 촬영했다. 움직이는 모형 세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 긴장이 점점 고조되면서 카메라 움직임도 훨씬 역동적으로 바꾸어 나갔다”고 밝혔다.

에밋의 눈에 하워드는 구세주다. 그가 벙커에 자신을 받아 주어 살 수 있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에밋은 좀 멍청한 게 아닐까. 어쩌면 뭔가를 더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정은, 미셸이 한다.


ㅣ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여자, 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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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클로버필드 10번지` 스틸컷]

그리고 미셸이 있다. 처음엔 당연히 하워드에게 납치당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자신을 살려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미셸이 믿음과 의심 사이를 왔다 갔다하며 혼란스러워 할수록 안팎의 상황은 점점 그를 압박해 오고, 관객은 의자 등받이에 좀처럼 등을 붙일 수가 없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는 자칫 신경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를 무척 매력적으로 연기해 낸다. 근래 개봉한 스릴러에 없었던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이유다. “숨을 참게 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토탈 필름)

에이브럼스가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만일…’이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당신이 어딘가에 갇혀서 바깥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갇힌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정말 강력한 전제이지 않은가.”

이제 미셸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중요한 건 그가 강인하고 영민한 자기 자신만큼은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미셸을 따라가면 된다. 손에 땀을 쥐고.


댄 트라첸버그 감독 인터뷰

내가 그랬듯 당신도 짜릿한 두근거림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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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튜브 영상 캡쳐]

관객을 주무르는 솜씨가 신인 감독의 것이라기엔 예사롭지 않다. ‘클로버필드 10번지’로 장편 데뷔를 치른 댄 트라첸버그(35) 감독을 e-메일로 만났다. 그의 답변에는 호평 세례를 받은 첫 영화에 대한 흥분이 가득했다.

이 영화의 연출 제안을 받고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가슴 두근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말 그대로 온몸이 반응했죠.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영화도 좋지만, 관객이 의자 끝까지 몸을 기울인 채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손에 땀을 쥐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 시나리오가 그렇다는 걸 단번에 알았죠. 관객들은 극장에 불이 켜지자마자 할 이야기가 많을 걸요.”


‘클로버필드’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인데, 이 프로젝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흥미진진하며 무섭고 유머러스한 면이 있죠. 이 프로젝트 특유의 유전자와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어요.”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영화 전반을 지배합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세상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내 침대 밑에서 일어나는 일이든, 인간에게 공포심을 가져다 주는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일단 정체를 알게 되면 공포심은 한결 줄어들죠.”

한정된 공간 안에서 촬영 대부분을 진행했으니, 촬영·미술·음악 등이 무척 중요했을 것 같아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사용했던 방법들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가령 특정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게 되죠. 물론 반전의 장치로도 썼지만.”

존 굿맨의 변신이 놀랍더군요.
“평소 인자한 아버지 역할을 하던 배우인데, 뭔가 의뭉스러운 면이 있는 남자를 연기하면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하워드가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되기를 원했기에 유머러스한 면도 넣었어요. 존 굿맨은 대단한 배우죠.”


첫 장편인데 성공적인 데뷔라는 말을 듣고 있죠. 소감은요.

“정말 커다란 격려가 됩니다. 특히 부모님에게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니 무척 자랑스럽지 않으셨을까요.”

미술을 전공했고, 광고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의 길로 들어선 이유가 궁금한데요.
“장난감 인형을 가지고 영화 촬영을 흉내 내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줄곧 영화감독을 꿈꿔 왔어요. 리들리 스콧, 마이클 베이 같은 감독을 동경해 왔죠. 앞으로도 지적인 즐거움과 액션의 짜릿함이 함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작업하려는 프로젝트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대규모 탈취극입니다. SF영화예요. 관객을 완전히 매료 시킬 수 있을 겁니다!”

글=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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